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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s Dec 31. 2023

미래를 알지만 현재를 살며

노령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의 예기애도

보리와 만난 13주년, 그리고 14주년이 지나며

나의 슬픔은 하루가 갈수록 짙어진다.


보리는 13살 반이 지나면서부터 건강상태와 활력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고,  

14살이 지나면서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노령동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래 '예기 애도'란 시한부 혹은 만성질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주로 겪는 것으로, 병의 진단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기간에 적용되는 개념이자, '그 사람이 죽을 가능성에 대해 누군가와 상의하고, 그 사람이 없어지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임종을 앞둔 사람과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등의 행동을 포함하는 개념(Rando, 1983)'이라고 한다(애도상담의 실제, 강영신, 이동훈 역, 사회평론아카데미, 2019).


개념 자체만 놓고 보면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적용되는 내용이겠지만, 오랫동안 함께 한,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동물이 늙고 병들게 되면 그 보호자도 예기 애도의 상태를 겪게 될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첫 고양이 '애기'가 나이 들어갔을 때 나는 내 고양이가 가까운 미래에 정말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애기가 떠날 어느 날을 늘 상상하며 살았지만, 그날이 정말 오리라고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은 했어도 느끼진 못했다. 

노환이 아니라 급성질환으로 한 달 만에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거라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던 것일 수도 있고, 머리로는 알면서 마음으로는 짐짓 회피해서였을 수도 있다.

마치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것처럼. 

그땐 정말 그랬다.

 



2023, 6월


반려동물 상실을 한 번 경험하고 난 후의 마음은 그 전과 많이 다르다. 

늙어가는 보리를 보며 곧잘 겁먹고, 미리 슬퍼한다.  

그런 만큼 현재의 매 순간이, 매일매일이, 조마조마하면서도 애틋하다.


결국 사람도 누구나 죽을 줄 알면서도 현재를 살지 않나. 욕심껏, 아등바등.  

그런 것처럼 나의 막둥이, 보리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이 순간들이,

지금의 내겐 삶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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