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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Nov 01. 2020

내가 믿는 방식의 긍정

딛고 일어서는 마음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나 다른 문장들을 좋아한다. 어디선가 그는, 기분 좋게 살면서 아름다운 것들만 본다고 감수성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순과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도 옳고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온몸으로 아픔을 감당할 때 거기서 감수성이 생긴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아름다움이나 좋은 것은 일차원적이지 않다.

긍정도 마찬가지다. 밝고 예쁜 것으로 다 덮어버리고는 그저 웃고 힘내자는 식의 긍정은, 긍정이라기보다 기만이다. 긍정의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이다. 유의어는 '납득'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일단 현실을 인정하는 것, 이어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긍정은, 현실 위를 덮는 포근한 담요(를 찾을 거면 차라리 단 걸 먹는 게 낫다) 같은 게 아니라 굳게 딛고 일어서는 주춧돌에 가깝다.

같은 의미로, 힘든 시기를 통과 중인 친구에게 힘내라는 말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웃고 있건, 울고 있건, 그가 내 앞에 멀쩡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다는 거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위태로운 삶을 견뎌내기로 한 그의 긍정을 존중한다.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내게도 힘내라는 말을 건네지 않았던 수많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냥 함께 있어 주거나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적 이야기를 나눠 주었고, 헤어질 때 꼭 안아 주었다. 그들에게 배운 것처럼,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과 언제든 필요할 때 말하거나 기댈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는 마음을 알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요즘의 일상은 겉보기엔 평화로운데, 안에서 롤러코스터를 탄다. 어제 멀리서 온 부고에 이어, 오늘 늦은 밤 일하다가 또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의 부고는 한동안 가슴에 머물며 흔적을 남긴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꾸 별이 되는데, 지금의 상황은 작별과 위로의 인사를 제대로 건네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하루는 또 시작될 거고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가며 때때로 장난스럽게 웃을 테다. 삶의 레이어는 한 겹이 아니니까. 슬픔을 같은 양의 눈물로 치환하기보다 슬쩍 웃으며 담담하게 스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건 그래서다.

그렇다고 마음속에 떠난 사람들의 자리가 없어진 건 아니다. 마음이란 새로운 사람이나 기억이 원래 있던 것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전부 더해서 점점 더 커지는 존재다. 그렇게 더 커진 마음 안에 여전히 떠난 이들의 자리가 있다는 걸, 남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언제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빗소리가 요란스러운 새벽이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전화를 하고, 건너편의 목소리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을 거다. 그리고 여전히 힘내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믿는 방식의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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