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동안의 휴가
덱사메타손 치료를 끝내고 벨케이드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휴가를 받아 대전으로 내려왔다. 확진 후 꼭 한 달 만이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일상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살던 집’이라는 환경과, 가족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보름 정도 집에서 지내게 된다고 하니 모두의 긴장이 풀렸는지 가족들 사이에 사소한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금방 다시 평온을 찾았다. 나와 막내와는 거의 조심하지 않고 놀게 되었고 시어머님과 큰동서와는 집안 식구들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가사를 돕는 한권사와는 살림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 환자 모드로 사는 것도 좋았지만 주부 모드로 돌아온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일기 발췌_2010년 2월 17일(수)
어젯밤 대전에 내려왔다. 3월 2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치료는 주 2회 벨케이드 주사를 맞는 것인데, 2주 치료하고 한 주 건너뛰는 식으로 총 12주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러니 치료가 시작되면 집에 올 기회가 더 줄어들 것이다.
막내의 침대에서 잤더니 좀 추웠다. 아침에 열이 37도 7부까지 올라서 긴장했으나 정오에 36도 7부로 떨어져서 안심했다. 둘째와 남편이 차려준 아침을 먹었고, 옆동에 사는 시부모님이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S자매가 문자로 안부를 전해주었고 K 집사님이 전복죽을 끓여다 주시겠다고 전화하셨다. 미래에 내가 완치된다면 그건 사랑을 많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창기 교수도 인간인지라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약 처방하기 전에 체중도 재지 않았고, 계획에 없던 뼈 주사를 즉흥적으로 처방하는 등 실수가 보였다. 의사만 믿으면 안 되고 보호자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옆 침대 환자 남편 말이 생각난다.
일기 발췌_2010년 2월 18일(목)
어제 아침에는 남편이 시아버님께 무례하게 말해서 내 마음이 상했다. 그 이유를 나중에 들으니, 내 체온이 올라서 긴장하고 있던 차에 시아버님이 시어머님께 잔소리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짜증을 내는 것은 무슨 일로 긴장하고 있을 때인 경우가 많다. 긴장되어 있을 때라도 짜증 내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괜히 왔나 후회하기도 했다. 어제 아침엔 열 때문에 몸이 무거운데 둘째와 남편에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도록 코치하는 게 힘들었다.
오늘 오전에 시어머님이 도와주려고 집에 오셨는데, 몸은 안 좋고 침실이 추워서 침대를 옮겨야 하나 환자용 침대를 사야 하나 궁리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살갑게 대하기가 어려웠다. 가사 도우미는 도우미대로 손님들이 들락거리니 피곤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은 막내가 유치원에 다녀오고 난 후 해소되었다. 막내는 내가 누운 침대에 올라와 책도 읽고 공부도 하였다. 나에게도 책을 읽어주고 반대말 맞추기 게임을 하며 즐거워했다. 엄마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어린 딸의 마음을 알기에 마음이 흐뭇했다.
독서치료와 상담을 하면서 만났던 내담자 중에 어려서 부모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폭포 같은 슬픔이 있었다. 누군가를 엄마라고 불러본 기억이 한 번도 없어 비 오는 날 산에 올라가 엄마를 소리쳐 불러본다고 했던 사람, 『바다가 사라진 날』이라는 그림책을 읽고 5세에 돌아가신 친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던 사람, 중학교 3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 누구에게도 따뜻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람이 생각난다.
그들을 통해 나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들은 슬픔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을 뿐, 깊고 쓰라린 감정은 평생 가슴속에 묻혀 있었다.
나를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해준 사람들의 목록을 적어보았다. 총 83명이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 100일 동안 기도하겠다는 사람, 1주일간 아침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겠다는 사람, 중보기도 모임에 내 기도 제목을 내놓고 기도한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이분들 외에도 말없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일기 발췌_2010년 2월 20일(토)
어제는 김현실 자매가 와서 부부 모임과 독서 모임에 대해 상의했다. 그녀와는 2004년에 만났으니 벌써 7년 지기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꼭 필요한 말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그녀에게 나는 호감을 느꼈었다. 몇 년 후 그녀 부부와 함께 부부 상호 지원 그룹을 결성했고, 독서 모임에서 그녀는 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공동 리더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오랫동안 의지하고 있다.
어제 처음으로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당신처럼 나를 믿어주고 따라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녀는 왠지 내 말은 다 수긍이 가고 반감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독서 모임에 나온 첫날부터 빨려드는 느낌을 받아서 계속 나오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제일 듣기 좋았다.
오늘 있을 독서 모임과 내일 있을 부부 모임 모두 현실 자매가 책임지고 진행해 주기로 했다. 그녀는 올봄부터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데 힘들다고 엄살 부리지 않고 독서 모임과 부부 모임 일을 성실히 도와주어서 너무나 고맙다.
D에게 전화가 와서 긴 통화를 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재작년 6월에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암세포가 간과 뇌로 전이되어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도 넘쳤다고 한다. 도와주는 친척 하나 없이 D 혼자 남편을 서울까지 통원시키며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받게 했고,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돈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기도와 금식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왔다고 한다.
과거 그녀를 만날 때마다 느꼈던 신중함과 겸손함은 이렇듯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안에 주님이 사시도록’ 한 데서 온 결과였으리라. 그녀는 내 치료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며 건강 관련 책도 한 권 추천해 주었다.
일기 발췌_2010년 2월 21일(일)
누군가 병에 걸렸다는 것은 그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인이다. 날 사랑해 주세요, 날 좀 바라봐주세요, 하고 몸이 보내는 메시지다.
과거에 나는 누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환자 자신의 어떤 실수나 죄악, 무지함, 탐욕의 결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이거나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환자가 되고 보니 인간사가 그렇게 단순한 논리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몸의 병이 이러할진대 마음의 병도 그러할 것이다. 마음이 병든 자야말로 더욱 큰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