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명상>을 읽으면서 필사를 하고, 고요히 생각을 해보면서 타로카드를 펼쳤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승려이면서 평화운동가이기도 하고, 어려운 불교 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게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먹고, 걷고, 일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아주 대단한 방법이 아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나를 바라보고, 책을 읽을 때면 책 읽는 나를 바라보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 챙김 명상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인식하는 것.
‘마음 지켜보기’라는 챕터를 읽으면서 필사를 하고, 몇 가지 질문이 떠올라서 서둘러 타로카드를 펼쳤다.
1. 명상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얻은 대답은 바로 검 에이스 카드를 뽑았다. 세 번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뽑은 한 장이 바로 검 에이스 카드라는 점이 신비롭다.
명상을 통해 얻는 것은 바로 온전한 생각, 명료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검 에이스는 목표 달성을 위해 긍정적인 행동을 하며 자신의 의지가 명료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그림 자체도 요가를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명상이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보여주는 카드여서 잠시 전율이 일었다. 카드에는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나비는 장자의 ‘호접몽’에서도 나오는데,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의 상태일 수 있다. 꿈과 현실이 일치가 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가 되는 순간 말이다. 결의에 찬 올바른 생각을 갖고, 분명한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가를 할 때나 하루 중 잠깐 동안 호흡명상을 하면서 나를 비워내는 시간을 갖는다. 심호흡을 열 번쯤 하면서 흥분되었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진다. 고요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은 덤이다. 지금 이 순간을 또렷하게 인식하게 만들고, 나의 모든 오감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명상이다.
아주 천천히 음식을 먹거나, 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실 때면 맛과 향과 냄새가 그대로 느껴질 때가 있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고 마실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 만지고. 그 모든 감각들이 살아난다. 명상을 통해서 분명한 생각을 얻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명료한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좀 더 자유로워지겠지.
명상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은 곧, 내 마음을 알게 되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남의 욕망을 좇는다. 조금 전 보았던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서도 그러했다. 소외된 사람들, 남의 욕망에 비추어 자신의 인생을 무력하게 느끼고, 보잘것없이 느끼면서 삶이 위축된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살아가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분별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후회하거나 미련 갖지 않을 수 있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선택한 일이니 말이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고 고요하게 바라보는 법을 익히는 것이 ‘명상’이다.
2. 호흡을 통해 집중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나는 스스로 어떤 존재라고 여기는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상을 통해 만나게 된 나 자신에 대한 자아상을 묻는 질문이다. 내가 묻고, 내가 답할 때마다 타로카드는 현명한 지침을 준다. 뽑게 된 카드는 ‘지팡이 여사제’ 카드였다. 여사제가 사자를 데리고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갈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다. 뭔가 당차고 강인해 보인다. 사자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한 손으로 쓰다듬고 있으며, 세상에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는 모습이다. 가슴도 어깨도 펴고 걸음걸이도 힘차다. 조금 전까지 기우제를 드리던 여사제의 염원대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떴다. 소원이 이뤄진 상태라서 그럴까. 자신이 원하고 갈망하던 일이 세상에 나타났다.
명상을 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강인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신념이 올곧은 사람이 될 것이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흔들리면서 살았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관계, 돈 버는 일 등 모든 일에서 내 목표와 신념보다는 사회의 기준 즉 남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일이지만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했다. 이것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홀로 독립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을까, 아이를 이렇게 키워도 될까. 분명 주체는 나인데 허수아비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길들여졌고, 알게 모르게 나의 야생성은 사라졌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안의 야성을 되찾으면 아마도 ‘지팡이 여사제’ 카드의 그림처럼 나는 당당하고 강해질 것 같다. 세상에 나를 당당하게 보여주어도 창피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기우제를 지내어 비를 내리게 한 위대한 신념의 표현’을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 같다.
타로카드는 나에게 생각하는 힘을 준다. 스스로 묻고 들여다보고 고민하게 하면서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타로카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떠오른다. 답은 바로 내 안에 있다. 타로카드를 해석하는 사람은 결국 나이고, 나의 상상력으로 답을 만들어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오늘 낮에 동네마다 걸린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의 현수막을 보면서 내 얼굴도 아닌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온 세상에 내 보인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일까, 혹시 잘못된 죄가 세상에 드러나면 창피해 지지는 않을까,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드러난다는데, 다른 이들은 그 얼굴을 보고 뭐라고 생각을 할까. 참 자신만만하구나. 나는 못 하겠구나. 내 얼굴이 저렇게 벽보와 현수막으로 도배가 된다면 얼굴을 들고 못 다닐 것 같은데, 정치인이 되려면 ‘뻔뻔한 낯짝’을 갖고 있어야 하는구나… 그렇지만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용기를 지닌 사람이 저렇게 정치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모든 이가 자기 신념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과 가야 할 방향을 정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일일 것 같다.
늦은 밤, 5월 1일이라는 새로운 한 달의 첫 시작을 타로카드와 함께 하며, 내면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나의 마음을 지켜보는 일은 이토록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