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만 세 번째
다용도실을 마지막으로 이사 4개월 만에 집의 모든 공간이 구색을 맞추었다. 물론 백 프로 깔끔하게 정리가 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치워야 할 것은 눈에 보이고 제자리를 못 잡고 뒹구는 물건들도 많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좋을지 감이 안 잡혀 인터넷을 뒤져 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딱 맞는 꿀템을 못 찾았다.
어쩌다 보니 집을 장만했다.
사실 난 부동산도 잘 모르고, 집에 대한 애착이나 '내 집'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무엇보다 집을 살 돈도 없었다. 그리고 결혼할 때의 계획/목표는 5년 후 브라질에 가서 사는 거였다. 5년이 아니어도, 브라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외국에 나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나가기 위해서는 집이 없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결혼 후 부모님 댁에서 1년을 보낸 뒤 내 이름으로 된 첫 전셋집을 계약했다. 금리가 낮은 버팀목대출 덕분에 매달 내는 이자는 십만 원 안팎이었고 생활에 큰 부담이 없었다. 신혼 2년을 보내고 이 집에서 아이도 낳았다.
집주인은 돌아가신 부모님 상속으로 이 집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약할 때는 매매 계획이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2년 후 집주인 사정상 집을 내놓았고 나에게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매매를 제안했다. 아파트 구매라니, 그것도 25년 된 구축을, 넓은 평수도 아닌데!
그렇게 조리원을 나오자마자 집을 보러 다녔고,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조금 넓은 평수로 리모델링된 집을 만났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되는 시기에 두려움을 안고 6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이사를 했다.
이때 마침 동네에 들어온다고 했던 지하철역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에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나에게 매매를 제안했던 첫 전셋집은 1억이 올랐다. 그리고 두 번째 전셋집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주인은 집을 내놓고도 세입자에게 말을 안 했을까? 부동산 아줌마 말에 따르면 전 주인이 알던 사람에게 매도한 것 같은데 새 주인은 나보다 어리고 직업은 스튜어디스라고 했다. (현타는 이럴 때 쓰는 단어인가 보다.)
그리고 2년 후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하게 됐는데 신혼집을 구하려니 너무 비싸서 이 집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뿔싸. 또 나가야 하는구나. 열심히 집을 알아봤다. 전셋값이 미치게 올라있었다. 상태가 좋은 다른 아파트 단지는 꿈도 못 꾸었다. 내 예산에 맞는 집을 찾으려면 평수를 줄여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당분간 고생은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같은 단지에서 다른 집에 비해 저렴하게 나온 같은 평수를 발견했다. 1층이고 리모델링이 되어 있지 않았다. 1층의 장단점이 있다지만 아이가 있으니 장점이 더 크게 다가왔고, 주인이 오랫동안 살아서 더러웠지만 도배와 장판은 해주기로 했다. 두 번째 집에 비해 8천만 원 비싼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