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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Sep 23. 2020

그냥 나서서 재수 없는 사람이 되자구요

(3)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 부족한 것 vs 빛나는 것

----여기서부터는 미리보기만을 제공합니다---



창피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꼭 오셔야겠는데요.”


이게 무슨 말일까.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의 의중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어 난감했다. 내가 상을 받을 가능성은 분명 조금도 없어 보였는데, 시상식에 꼭 오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학부시절의 일이었다. 교내 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했다. 여름 내내 꽤 공들여 만든 것이었고, 완성된 작품을 우리끼리만 보기 아까워 중앙대학교에서 개최하는 영상제에 출품했다. 청소년과 대학생이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나름 1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예비 영상인들의 축제였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작품이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을 안고 중앙대학교 자이언츠 구장에서 진행하는 본선 진출 작품 상영회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그만 기가 팍 죽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작품이 눈에 띄게 초라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부터 단편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상영됐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당시 5D Mark II 카메라 같은 최신 디지털 장비로 촬영되었고, 있던 사람도 감쪽같이 없어지게 만드는 특수효과까지 뽐내고 있었다. 편집이 프로 수준으로 매끄러웠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런 작품들 속에서 우리 작품은 나쁜 의미로 유난히 튀었다. 6mm 카메라로 어설프게 찍은 저화질 영상과 (무려 테이프를 넣고 찍는 카메라였다)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주먹구구식 편집 실력이 많은 사람들 앞에 낱낱이 까발려졌다. 게다가 상영 순서도 맨 마지막이라 대비성은 극에 달했다. 사람들의 야유가 들리는 듯했고, 우리 작품이 상영될 때, 나는 창피해서 거의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꽤 착잡했던 것 같다. ‘본선에 진출한 게 어디야’ 하면서도, 아까 상영된 조잡한 장면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하여 마음이 괴로웠다. 



* 커버 출처 : Filming a Great Gatsby origin story shows our culture is eating itself,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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