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초, 친한 숲해설가 Y선생님(이하 Y)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의 한 청년 센터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숲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인데 나를 추천하고 싶단다. 원래는 Y에게 들어온 제안이었다. 지난해 그녀는 다른 지역 청년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때 함께 일했던 매니저가 다른 지역 센터로 이동했고, 그곳에서도 숲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자 Y를 찾은 것이다. 이미 여러 수업으로 바쁜 Y는 적임자로 나를 떠올렸다. 그녀는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와 일정표를 보내며 한 번 생각해 보고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당장 3월부터라 (담당 매니저님이) 좀 급해 보이시긴 했어요." 라며 멋쩍게 웃었다. 자,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하나 있다.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이 이 기준을 바탕으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갈린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이다. 썩 괜찮아 보여도 왠지 하기 싫은 일이 있고,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데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 이런 느낌들을 가벼이 여기고 결정을 내리면 입 안을 굴러다니는 모래알처럼 무언가가 자꾸만 속에서 까끌거리는 것 같다. 이걸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저걸 택했다면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영양가 없는 상상을 거듭하게 된다. 그 끝엔 착잡함만이 남을 거라는 걸 알면서. 그리고 마음이란 녀석은 하기 싫은 일을 더 하기 싫게, 하고 싶은 일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새기곤 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는 미련을 줄이기 위해 '하고 싶은가 아닌가' 필터를 장착한 다음 앞에 놓인 선택지를 마주한다. 내 마음이 어떤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에는 종이를 놓고 한쪽에는 이걸 선택했을 때의 좋은 점, 다른 한쪽에는 안 좋은 점을 써 내려가 보기도 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눈앞에 정리되어 상황이 조금 더 명료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장단점을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이 내려지는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장점이 마구 떠올라서 줄줄이 쓰게 되고, 그 반대라면 단점이 길어지곤 하니 말이다. 적는 걸 마치고 읽어볼 때보다 쓰는 과정에서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Y의 전화를 받은 날부터 바로 고민에 들어갔다. 나는 이 일이 하고 싶은가 아닌가. 주업으로 삼고 있는 김포 일이 올해 어떻게 될지 정해지기 전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 김포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으므로.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 일을 선택했을 때의 장단점을 차분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자꾸만 청년들과 숲에서 뭘 하고 놀면 좋을지, 그들 앞에 서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만 자꾸 떠오르는 거다. 마음은 이미 선택의 기로를 일찌감치 넘어 버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할지,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 마음이란 녀석은 어쩜 이리도 빠르고 종잡을 수 없는지. 꼬박 하루를 손안에 쥐고 있던 고민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고 다음날 저녁,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이 일 해볼래요. 정신 차려보면 자꾸 청년들이랑 뭐 할지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저 이거, 하고 싶은가 봐요."
숲에서 청년들을 만나는 건 나의 오랜 바람이었다. 현재의 숲교육, 숲체험, 생태체험은 대부분 유아와 어린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생태체험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번져나갔고, 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야외학습과 생태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거기에 중·고등학교 청소년과 청년, 노인들은 빠져있다. 청년인 내가 숲에서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기에 다른 청년들도 이런 것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소수일지라도 나처럼 숲과 자연을 좋아하거나 숲해설을 통해 자연의 매력을 알고 나를 돌아보게 될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이동거리며 진행시간, 보수 등은 뒤로 젖혀두고 내 마음은 청년들을 만날 생각에 한껏 부풀었다. 그런데 일을 수락하고 담당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Y가 진행했던 프로그램과는 사뭇 달랐다. 8명쯤 되는 소규모 청년들과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번 만나면서 산책하듯 진행했다던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2~30명 대상, 기수제로 매달 참여자가 달라지며 한 기수당 3회만 수업을 한단다. 소수 인원과 오순도순 관계를 맺어갈 생각으로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던 머릿속이 순간 텅 비어버렸다. 아니 잠깐만, 30명이라고?
실내수업이나 강연도 10인 이하일 때와 수 십 명일 때 진행방식과 내용이 달라지겠지만, 변수가 많은 야외에서 진행하며 설명뿐 아니라 여러 활동들도 함께 하는 숲해설의 특성상 인원수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 많은 것들이 예상과 달라 당황했지만, 어쩌겠는가. 이왕 선택을 했으니 책임지고 좋은 선택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단 센터 근처 공원과 산에 성인 2~30명이 한데 모여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행군이나 트래킹 하듯 마냥 산을 걷기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당장 내일모레 답사 일정을 잡았다. 고맙게도 Y가 동행해 주었다.
프로그램 진행 장소인 센터 뒷산은 생각보다 여건이 좋지 않았다.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이 많았고 초입에 있는 빈 터, 중턱에 나무 데크 말고는 좁은 오르막길과 계단뿐이었다. 정자가 있었지만 그곳에도 30명이 모두 모여 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상까지 15분이면 오를 수 있는 낮은 산이라니, 여기서 3시간의 수업 시간을 채우기가 여간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올 때와 너무 더울 때를 대비해야 하니 실내 프로그램도 함께 구성하기로 했다. ―프로그램 일정이 3월부터 7월까지라 5월 말부터는 슬슬 더워질 터였다.― 그래도 답사를 하고 나니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났던 근심걱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어떤 수업을 해야 할지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역시 현장에 와서 직접 봐야 한다. 책상 위에서보다 현장에서 더욱 신나고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센터를 둘러보고, 청년들을 만날 강의실의 단상 앞에도 서보고, 청년들과 누빌 숲도 돌아보고 나니 더욱 실감이 났다. 다음 달에는 이곳에 서서 수십 개의 시선을 견뎌내며 수업을 하겠구나. 숲과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섞여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이끌며 숲을 안내하겠구나. 설렘과 긴장으로 몸통 안쪽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래, 해보는 거야. 언제나처럼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