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일반적인 여행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에 있어서 다른 의미가 있다. 어릴 때의 나는 여행 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었다.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고 가서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고 예쁜 것을 봐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사람들이 왜 여행을 가고 좋아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연애를 하다 보니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여행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었는데, 그때도 사실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이별하고 힘들어하던 나에게 사람들이 바람이라도 쐬자고 하면서 당일치기로 가까운 지역에 여행을 제안했고 그곳에 다녀온 뒤로 나는 여행이라는 것이 그저 새로운 공간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예쁜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는 그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지금의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고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기도 하며 일상생활 속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도 친구와 터 놓을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여행을 가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나면 갑자기 내 마음의 벽을 뚫고 나오게 됐다.
예전엔 여행을 자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진짜 노는 걸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사람들에게 여행도 자주 가고 노는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치고 있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것에 대한 설렘과 도전이기도 하고 예쁜 곳을 가고 싶은 욕구도 물론 있긴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큰 의미는 현실도피, 힘든 내 삶에 대한 위로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많고 커질수록 더욱더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진다. 내가 여행을 자주 간다면 그만큼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던 거다.
나이가 들수록 여행이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하지도 않고 멀리 여행을 다녀오면 오히려 더 힘들고 지치는데도 여행을 가면 현실에 지쳐있던 내가 깨어나게 되는 기분이고 또 다른 내 모습을 마주하기도 한다. 항상 비판적이며, 부정적이었던 내가 여행을 가서는 별거 아닌 일에도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부정적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고 현실에 치여서 살다 보니 작은 기쁜 일도 마주치기가 힘들어서 아니었을까…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있고 별로인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있다. 어떨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만나고 싶지가 않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냥 그런 순간이 있다. 아무도 내가 안보였으면 좋겠고 날 몰랐으면 좋겠고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럴 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아무도 날 모르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 기분이 좋다. 여기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여행을 가게 될 때마다 나는 꼭 하나 이상은 결심을 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여행이 나에게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건네주는 기분이다.
최근에는 주변 사람들과 여행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원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었다. 두 가지의 다른 매력과 장단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혼자서 여행을 다닐 때는 여행을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는데, 평소에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거나 말하기 힘든 이야기가 오히려 아예 나를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너무나 쉬웠다. 한 번 보고 말 사이인데 라는 생각이, 두려워서 꺼내지 못했던 나의 속마음과 속이야기를 아주 쉽게 내놓게 했다. 그리고 평소 일상에서는 정리하지 못했던 복잡한 내 생각들을 깔끔하게 끝내고 결론을 낼 수 있게 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를 꿈꾸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매일 있는 그 공간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잘 나지 않고 답답할 때가 많은데 그런 공간을 벗어났을 때 이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해결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에서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같이 하는 여행에서는 같이 여행을 떠난 사람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래서 여행을 함께 갔다 오면 뭔가 더 가까워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조금 어렵겠지만 나중에 내 꿈이 있다면 엄마와 둘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다. 친구나 연인과의 여행은 생각보다 자주 가면서 가족과의 여행은 어렸을 때 말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서 함께 여행을 가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 가족이지만 오히려 친구나 연인보다 더 어색한 사이처럼 표현도 잘 못하고 서로에 대해 더 모르는 것도 많은 것 같아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이라는 그 단어에는 일상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까지도 스스럼없이 꺼내게 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어떠한 장소로의 이동이나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생각조차도 함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기분이다.
가끔은 몸이 떠나는 여행 말고 나를 찾아 떠나는 내 생각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 나에 대해서 탐구하는 여행이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배워본다거나 체험을 해보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거다. 학생 때 더 많은 것을 해봤어야 하는데 너무 비슷한 환경과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서 새로운 시도나 경험을 많이 못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원하는 것을 해볼 수 있는 경제력이 생겨서 정말 많은 곳을 가보고 체험해보고 배우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기도 했다. 이 길을 가보지 않았다면 이걸 도전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내면의 여행과 외면의 여행 두 가지 모두 나에게 있어서 참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앞으로도 두 가지 여행을 계속해서 떠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멋진 곳을 발견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