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들의 술 취향 - 막걸리와 막걸리에 어울리는 것들
비 오는 날은 기막히게 술과 궁합이 맞아서, 우리들은 종종 비오는 날을 핑계삼아 술을 한 잔, 두 잔씩 마신다. 그게 맥주인 날도 있고, 소주인 날도 있고, 막걸리인 날도 있지만 비오는 날엔 역시 막걸리라는 오래되고 진부하지만 좋은 말을 주고받고는 한다.
막걸리는 발효주기 때문에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엄청난데-물론 이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더라.- 나는 막걸리의 뽀얀 쌀물이 목을 넘길 때 남는 구수함 때문에 막걸리를 포기할 수가 없다. 막걸리를 주는 방법은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다. S와 자주 가는 술집인 '숲'에서는 양은잔에 막걸리를 준다. 오래된 세월만큼 고전적인 방식이다. 막걸리만큼 여러가지 잔에 어울리는 술이 있을까. 예를 들어 와인을 양은잔이나, 나무 그릇에 마신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맛은 다르지 않겠지만. 술에도 어울리는 무드라는 게 있으니까. 막걸리는 소주나 맥주보다도 편한 기분으로 털레털레 마실 수 있는 거 같다. 누구와 먹든 술은 좋지만, 왠지 막걸리는 꼭 편한 사이와 마셔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막걸리는 은근히 금방 취해서, 마시다 보면 철 모르고 헤벌레 웃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니까. 편한 차림새로 마실 수 있는 친구와 집 근처에서. 구색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끼리.
막걸리는 종류도 꽤 많아서 소주에 대적할 만도 하겠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밤 막걸리, 잣 막걸리처럼 기분 막걸리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의 막걸리뿐만 아니라 요새는 생과일 막걸리도 많이 나오니까. 처음 S와 막걸리 전문점에 가서 생딸기 막걸리를 먹었을 때는 시럽을 쓰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정말 생딸기를 갈아서 넣어주었다. 별 것 아닌 반전이었지만 생각외로 괜찮았다. 사실 술에 과일이 들어가면 맛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서도. 막걸리와 딸기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막걸리의 씁쓸 달달한 베이스에 딸기가 잔뜩 갈려서 선분홍빛의 걸죽한 술을 따라낼 때, 쎈 막걸리 향 사이로 딸기향이 비집고 들어와 코를 때렸다. 한입 홀짝 먹고 나서는 그냥 좀 달달한 막걸리를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두 모금 세 모금이 넘어가자 딸기 향이 뒤는게 훅 올라왔다. 딸기맛 탄산음료를 막걸리와 같이 먹는다면 이런 느낌은 아닐까. 평소보다 더 달달하니 이게 바로 앉은뱅이 술인가. 싶기도 하고.
막걸리를 먹는다고 하면 주로 안주를 '전'종류를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막걸리가 기름진 전의 느낌을 싹 내려가게 해 주어서 그렇겠구나 하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그런데 막상 술을 자주 마시며 막걸리와 여러 음식들을 먹게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막걸리는 제법 아무데나 잘 어울리는 술이다. 기름진 음식에 어울리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담백하거나 마른안주에도 꽤 잘 어울린다. 막창을 먹을 때도 막걸리와 곁들인 적이 있었는데, 통통한 막창을 부추무침과 함께 집어서 입에 넣고 막걸리를 홀짝 마시면 막창의 고소 달달한 맛이 두 배가 되더라. 또, 막걸리와 먹태를 같이 먹은 적도 있었는데 두말하면 헛소리일 정도로 어울렸다. 먹태를 시키면 가게마다 나오는 소스가 조금씩 다르지만 요새는 청양고추가 총총 썰려 들어간 마요네즈에 간장? 을 곁들인 소스가 많이 나온다. 결을 따라 열심히 찢어놓은 먹태를 특제 소스에 찍어 먹고, 막걸리를 쭉 마시면 먹태의 약간 텁텁한 식감과 뻑뻑한 느낌이 사라진다. 이렇듯 막걸리는 정말 어디에나 어울리는 술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이랑 먹어야지! 하는 사람들이 꼭 있을 것이다. 마치 나와 S처럼. 다른 곳에 먹어도 어울리지만 전이랑 먹을 때의 케미는 다른 데 비할 수가 없다.
자주 가는 술집인 '숲' 에는 오징어 김치전, 눈꽃치즈 김치전, 파전-을 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 종류가 세 가지였던 것 같은데 마지막이 파전이 맞았던지..-을 파는데, 우리는 항상 가면 다른 메뉴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징어김치전을 시킨다. 언제 시켜도 경이로울 정도로 오징어 다리, 몸통이 커다란게 올라가니까. 그리고 테두리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겉이 바삭하게 익혀져서 약간 그을린 듯한 모양으로 나온다. 나는 전의 바삭한 부분이 소리지를 정도로 좋다. 너무 타지 않았다면 말이다. 김치와 오징어, 오징어 아래 얇은 밀가루 반죽 부분을 바삭하게 같이 먹으면 뒤에 꼭 막걸리를 먹어야 한다는 걸 잊을 정도로 좋다. 다만 아쉬운 것 하나는 '숲'에는 기본 막걸리 하나 뿐이라는 거. 술은 지겹지 않지만 가끔 힘들 때가 있으니까. 막걸리 종류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 본다.
여전히 비 오는 날은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창 안의 가게에서 도란도란 앉아 술을 한 잔 하고 싶다. 막걸리든 뭐든 말이다. 사실 실컷 막걸리 찬양론을 써 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항상 말하듯이 누구와 어디에서 먹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다음에는 좀 더 신기한 조합을 시도해 볼까. 파스타에 막걸리같은 조합.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어울리면 너무 좋을 것 같은 조합으로.
20190409
너와나와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