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1994 리뷰]
17화에서 빙그레가 쓰레기를 찾아가 형이라고 부를 때, 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흘러나온다.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고 김광석이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쓴 이 곡을 들으면, 그의 아픔이 절절이 공감되는 한편,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가사가 언뜻 의아하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 아프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의 아픔에 동조하지는 못할 망정, 사랑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빙그레가 그렇게 아프게 고민한 짝사랑도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쓰레기가 힘들게 선택한 나정을 향한 마음도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응사는 모두가 아프게 고민하며 사랑하며 성장하는 내용을 조망한 드라마가 아니었던가.
1화에서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며 동일은 말한다. 장동건 팀이 이기고 다슬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그리고 마치 데자부처럼 2화에서 나정이 좋아하는 연세대 팀이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하고 나정은 침대에서 울고 있다 -물론 디스크로 아파서;-. 1화와 8화에서 반복되는 쓰레기의 '다슬이가 되어라'는 주문에 1화 나정은 '다슬이 왔어요'하며 답하고(물론 쓰레기에게 그렇게 답하는 것은 아니다;) 나정은 응답없는 짝사랑에 힘들어하지만 끝내 그 사랑을 쟁취하는 다슬이와 닮았다. 그리고 그녀는 14화와 17화, 20화와 21화에서 그 사랑 때문에 울게 되는데, 이것이 쓰레기와의 사랑의 전환점이 되는 부분들이라는 점은 또한 다슬이의 눈물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김광석의 또다른 노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은 고 김광석이 헤어졌던 첫사랑과 재회하고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가 울며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을 듣고 쓴 노래라고 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그녀가
처음으로 눈물 흘리던 날
온 세상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내 가슴 답답했는데
이젠 더 볼 수가 없네
이제는 더는 만날 수 없는, 완전한 이별의 순간을 노래하는데, 이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 가장 밝은 포크송이다. 이 노래에 대해 설명해주던 선배는 고 김광석이 그녀의 이별선언을 들으며 그녀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처음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며 떠난 후 화자는 그들의 연애가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완전히 이별하고 더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고 느꼈을 때, 화자는 사랑을 깨닫는 노래를 부른다.
20화에서 나정이 쓰레기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이 노래가 떠올랐다. 나정은 이별을 말했는데, 그 후로 쓰레기를 의식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에게 줄 감기약을 들고 다니고 마주칠까봐 계단으로 다니며,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녀의 사랑은 여전하다. 카페에서 나정이 울며 했던 말은, 내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니 그걸 알아달라는 외침이다. 쓰레기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의 외침을 알아듣고 자신의 사랑의 방식을 그녀에게 맞춰간다.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이. 그렇게 둘이 만났을 때 흘린 나정이의 눈물은 -마치 다슬이처럼- 사랑이 찾아온 순간의 눈물이 된다.
응사는 이별을 확인하는 말도 사랑의 언어로 만든다. 나정의 말을 되새겨 보면, 그녀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걸 그랬다'고 한다. 누군가는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르다고 노래했지만 원초적인 사랑의 형태인 아이들의 사랑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가 열이 나면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말한다, 나 아파요, 하고.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는데, 학교에서는 꾹 참다가 집에 달려가서 엄마에게 말하기도 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기대하는 것은 치료일까? 정말 아픈지 엄마만 안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바란다. 그리고 그 관심에 응답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별의 말이 사랑의 언어가 되는 마법에는 소통과 신뢰가 있다. 아프다고 말을 하려면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야하는데, 그 속에는 상대가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과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응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숨어 있다. 그래서 상대를 '나를 품어줄 대상'으로 여기지 않거나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지 못한다면 나는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 없다. 그래서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쓰레기를 보며 나정은 쓰레기가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신뢰하고 있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재준이 아프다는 문자를 보내서 이에 대한 자신의 변화를 드러내자 나정은 자신의 말이 드디어 가 닿았음을 알게 된다.
다시 빙그레의 사랑으로 돌아가보면, 빙그레는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쓰레기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감추고 고민하는 것만으로 버거워서 그 외의 것을 돌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빙그레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빙그레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도와주려는 쓰레기의 관심을 거부한다. 짝사랑의 딜레마다. 자신의 사랑만으로 버거워서 정작 좋아하는 상대의 관심을 거부하고 상대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그렇게 소통하지 않게 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걱정하고 지켜보는데도 그에게 '힘들다' 한 마디를 건넬 수 없게 되었을 때, 빙그레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빙그레는 아파서 정작 아프다는 한 마디를 할 수 없었던 관계를 닫는다. 그제서야 쓰레기와 빙그레는 형과 동생으로 믿고 이야기하는 관계를 연다. 해태는 남녀간의 언어 차이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애정에게 차이고, 언어를 넘어서서 행동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둘은 재회할 수 있게 된다. 삼천포는 자신이 옳다는 고집을 버리고 윤진의 말을 존중하며 들었을 때 또 한발 나아간다. 윤진이 반지 대신, 번지르르한 프로포즈 대신, 통장 세 개로 오는 삼천포의 투박한 언어를 이해했을 때 삼천포와 윤진의 관계도 한 걸음 진전한다. 관계마다 소통의 방식은 다르지만 솔직한 모습으로 대화하고 상대를 받아들일 때 그들의 관계는 발전한다.
사랑이 무엇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힘들고 약해진 자신을 오픈하지 못하는 관계에는 사랑이 머물지 못한다고 응사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자신의 진짜 마음을 내비치고 또 상대가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응사 속 인물들은 자신의 사랑을 향해 한 발 더 내딛어 간다. 소통과 신뢰를 통해 관계를 깊게 이어나가는 길에 우리의 사랑도 있지 않을까.
2013년의 겨울쯤
응갤과 이전 블로그에 썼던 리뷰 퇴고 후 재업.
* 2013년 본방으로 보았을 때 거의 확실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래를 들었는데 이후 블루레이를 봤을 때 이 노래가 아니었다. 이 리뷰는 본방을 보고 얼마 후 쓴 것이라 들었다고 생각한 곡으로 쓰지만 다른 곡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