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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계약인간 22화

급하다는 거짓말

by 소소산

계약 만료를 며칠 앞두고 바로 이어서 새로 계약을 맺은 회사로 출근했다. 새 회사에서는 한시가 급하니 최대한 빨리 출근해 달라고 했고, 이전 회사의 남은 계약 기간은 연차로 메웠다. 그러나 출근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인수인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용하실 의자가 아직 안 왔어요. 우선 여기 앉으세요.” 나는 임시 의자에 앉아 출처를 알 수 없는 오피스와 같은 업무용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했다.

‘아……. 잘못 골랐구나.’ 업무가 급하다고 하기에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최소한의 업무 준비도 해 놓지 않았으면서 도대체 왜 출근하라고 한 걸까?


도대체 왜 출근하라고 한 걸까?

영세한 기업들 중에는 ‘당연한 업무 기본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곳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합법인지 의심되는 컴퓨터 업무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업무와 관계없는 사무실 청소를 하라거나, 막내라는 이유로 직원들의 컵을 모아 매일 닦으라거나, 사장의 개인 업무를 시키는 등 상황도 다양하다.


작은 기업의 정규직이 큰 기업의 계약직보다 나은 점은 계약 기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회사를 옮길 수 있는 젊은이들에겐 그마저도 장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구나 저런 환경 속에서 더 오래 일하기를 바라는 일은 더더욱 없을 테니. 그날 결국, 회사 선택의 잘못을 깨달은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뒤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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