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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Oct 29. 2020

부엔 카미노, 앞으로의 인생길도 안녕하길

1) 수연과 서진 1

수연은 오늘의 일정 중간 지점인 멜리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 생각이다. 여기에 오면 ‘뽈보(문어 요리)’를 먹어보라고 순례자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문어요리를 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섰다.

- 수연 씨

서진이 수연을 보며 웃고 있다.

- 문어 먹으러 왔어요.

- 같이 먹어요.

수연과 서진은 맥주와 함께 탱글탱글한 식감의 문어요리를 먹었다. 양념이 입맛에 맞아 빵과 함께 먹으니 든든한 식사가 되었다. 그들은 편안하게 오찬을 즐겼다.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기분이 어때요?

서진이 물었다.

- 홀가분해요. 편안하구요. 이렇게 긴 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가져 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 직업, 연애가 삶의 대부분이었고, 다른 건 꿈꿔보지 않았어요. 새로운 곳에서 걷는 일이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 신기해요. 돌이켜보면 꿈만 같지만 걸으면서 알게 된 것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서진 씨는요?

- 나도 이런 시간은 처음이에요. 그동안 내가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업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현재의 행복이 우선순위였던 적은 별로 없었어요. 일단 일이 성공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은 당장 행복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많은 변화가 있는 거죠? 기존 생각의 틀이 깨졌으니 앞으로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요.


두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겨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침묵을 깨고 서진이 물었다.

- 수연 씨는 어떤 일을 해요?

- 출판사에서 일해요.

- 책 만드는 일을 하는군요.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묻는다.

- 순례길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있나요?

- 아마도요. 왜요?

- 걸으면서 알게 된 것들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고 수연 씨가 말했잖아요. 직접 글로 써서 책을 만들면 어때요?

- 안 그래도 걸으면서 책 만드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진 씨 말을 들으니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드는데요.

- 정말요? 응원할게요. 책이 나오면 내게도 꼭 보내줘요.


두 사람은 맥주잔을 부딪쳤다. 수연이 물었다.

- 앞으로 이런 시간을 또 갖기는 어렵겠죠?

- 이렇게 긴 시간을 내는 건 어렵겠지만 일부러라도 만들어야죠.

- 이런 얘기 조심스럽지만 돌아가서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거 어때요? 여기에서 느꼈던 것들을 잊지 않게 서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나도 이런 얘기 조심스러운데 연애하자는 얘기는 아니죠?

수연이 손사래를 치고 웃으며 말한다.

- 아니에요. 정말 순순하게 순례길에서 보고 느꼈던 걸 잊지 않게 서로 도와주자는 거예요.

수연이 정색하며 장난스럽게 묻는다.

- 근데 내가 그렇게 무서워요?

-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직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요.

수연이 웃으며 말한다.

- 나도 마찬가지인걸요.

두 사람은 돌아가서 맞이하게 될 일상을 생각한다.

‘지금 느끼고 있는 평안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2) 수연과 서진 2

멜리데 이후 두 사람은 동행하여 걷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자신보다 보폭이 넓어 걸음이 빠른 서진을 보고 수연은 말했다.

- 서진 씨, 같이 가지 않아도 돼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앞서 걸어요.

- 수연 씨야말로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나도 이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죠.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연습도 하구요.

- 그렇다면 뭐. 언제든 먼저 가셔도 됩니다.

- 네.

서진이 웃으며 대답한다.


산 마르코스 언덕에 도착했다. 저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 탑이 보인다. 이제 5km만 걸어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번화한 꼼뽀스텔라가 아닌 산 마르코스 아래 ‘몬떼 도 고소’에 머물기로 한다.

함께 휴식을 취하며 내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내일 아침에 출발해서 산티아고 대성당 12시 미사를 함께 드려요.

수연이 제안한다.

- 좋아요. 그 후에는요?

- 그 후에는 각자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죠?

- 그럽시다.     


수연은 여행이 끝나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마음 상태가 희망 없음에서 행복한 상태가 된 것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될 만큼 지금은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였고, 편안했다. 윈디 덕분이다. 내일 목적지에서 윈디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서진은 한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아내에게 그동안 자신의 무심함에 대해 사과하고, 아이 양육 문제에 대해 상의하는 일이다. 그동안 직장에서도 동료들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몰아붙이기만 했다.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산티아고 대성당

이른 아침 여러 순례자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걷고 있다. 그동안 만나왔던 순례자들이 친구처럼 정답다.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보니 어느새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다다랐다. 웅장한 대성당의 위엄 앞에 순례자들은 포옹하며 감격의 순간을 나눈다.



‘부엔 카미노’ 당신의 순례길이 안녕하길. 앞으로의 인생길도 안녕하길.     


수연과 서진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엄숙하게 12시 향로 미사를 드렸다.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생각과 감정 흘려보내기’, ‘지금 여기에서 행복 선택하기’, ‘나를 위해 용서하기’, ‘가슴 뛰는 삶 살기’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두 사람은 미사를 마치고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스탬프가 찍혀있는 순례자 여권인 끄리덴시알을 제출하여 순례 인증 증서인 꼼뽀스뗄라(Compostela)를 받았다. 두 사람은 감격하여 서로의 완주를 축하해준다.

- 수연 씨 그거 알아요? 순례길 배낭의 무게는 인생의 짐이래요. 그래서 가능하면 본인이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해요.

- 그래요? 다행히도 내 인생의 짐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여기까지 왔네요. 무거워도 들을만했어요. 인생도 살만하겠죠?

- 그럴 거예요. 수연 씨, 그동안 애썼어요. 몸도 마음도.

- 서진 씨도요.

두 사람은 포옹하며 서로의 등을 토닥여준다. 수연이 말한다.

- 우리 축배를 들어요. 그리고 멋지게 각자의 삶으로 뛰어들어 볼까요?

- 좋아요.

두 사람은 인파로 넘치는 꼼뽀스뗄라를 헤치며 나아갔다. 그들 앞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 커버 이미지, 산티아고 대성당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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