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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오기 전에 회를 먹어봤다

노량진 <형제상회>와 <유달식당>에서 친구와 술 한잔

by 이춘노

위내시경을 마치고, 눈을 뜨면서 들었던 생각.


"아. 여름 오기 전에 회를 먹어야는데..."


"낮술이 땡긴다..."


건강하지 않은 독거남 머릿속에는 마구니가 있었다. 아마도 배우자가 있는 친구라면 감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할 일을 난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검진 중에 매진으로 가득한 기차 예매 사이트를 새로고침하면서 표를 구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수도권에 사는 독거남에게 연락을 했다.


"낮술 먹자."


곧 게임 출시라서 바쁜 친구임에도 이심전심이랄까? 다음날 바로 정오에 노량진 수산시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흔이 넘어서도 먹는 것은 너무 일관적이다. 왜 아저씨들이 매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에 같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지를 이제 알 것 같다. 딱히 돈이 없는 것도 아니라, 만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하지만, 변하는 것이 무섭다고 할까? 흘러가는 나이도 싫지만, 늙어가는 내 몸과 마음이 왜 이렇게 슬픈지. 마흔을 넘긴 노총각 아저씨들은 이렇게 좋은 안주에 소주를 마시면서 신세 한탄을 털어놓는다.


몸 생각해서 처음은 산사춘을 마셨다. 2인분 모둠회로는 꽤 비싼 부위를 골랐다. 그래도 취해서 회 맛도 못 느끼고 씹는 것보다는 비싼 술이 좋지 않을까? 솔직히 낮술은 먹고 싶지만, 이제는 각 1병을 마시는 것이 좀 부담스러운 때가 온 것 같다.

그런데 술이 너무 밍밍하다. 결국은 파란 소주병을 시켜 놓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꿈이 너무 컸기에 그만큼 좌절이 심했던 우리의 30대는 저물고, 쉬엄쉬엄 하면서 살자 했다. 그럼에도 야근에 수시로 오는 업무 단톡방 알림은 신경이 쓰이는 마흔이다.

모둠회에 산차춘으로 시작했다

느끼함을 잡고자 역시 매운탕을 시켰다. 이미 산사춘을 비웠고, 소주 한 병도 비웠다. 애매한 상황에 결국 소주 한 병을 더 시켜 놓고는 신라면 사리 하나 시켜 놓고는 마법의 라면 수프를 넣었다. 난 요리에 참 소질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물에 라면 수프가 들어가면 묘하게 맛이 난다.

그래도 일반 매운탕이 산사춘이라면, 소주는 라면의 MSG 맛이랄까? 한 술 떠먹은 국물에 소주가 절로 들어갔다. 거기다 라면 건더기에 김치를 먹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해장라면이다.

매운탕을 시켰는데 밋밋하다
역시 신라면 사리가 진리다

사실 무더위가 오기 전에 회를 먹자는 것은 핑계였다. 그냥 친구와 낮술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단순히 밥을 먹자는 말은 쉽게 남발하면서도 못하는 이유는 바빠서다. 그럼에도 그건 솔직히 애초에 그 사람과의 관계가 그 정도로 가깝지 않기 때문은 아닐지? 누군가 그랬다. 시간과 돈과 마음이 한 번에 모이면, 그게 관심과 애정이라고...


멀리 보이는 63 빌딩을 바라보면서 그때는 최고였을 당시를 추억하면서 나의 낮술은 아쉽게 마무리 지었다. 뭐... 또 다른 핑계로 낮술을 마시면 되니까? 다음에는 몸보신으로 민어라도 먹어보자고 마시면 어떨지.

공시생들의 카페에서 저 멀리 보이는 63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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