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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n 23. 2024

산정특례 연장, 그리고 짬뽕

전북대학병원 앞 <향미각>에서 꼬막짬뽕

  벌써 5년이 되어 갔다.


  내가 지리산에 있는 산내면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큰 병원을 가야겠다고 연락 왔을 때가 2019년 여름이었다. 그 해의 여름은 여러 의미로 뜨거웠다. 인생의 고비라고 생각될 만큼의 많은 선택을 해야 했던 환경이었다. 그리고 비도 참 많이 오고, 태풍도 왔기에 부모님을 뵙는 건 뜸했던 때.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의 전화 통화 후에 병원을 쫓아다녔다.

  각종 검사를 하고서 2019년 8월 8일에 내가 입사를 해서 동기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던 날에 어머니의 간암 확진을 받았다. 돌아오는 내내 난 조용하게 운전을 했고, 동기들과 식사를 하면서도 담담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나도 아들이었다. 잘 참던 눈물을 차에서 시원하게 울었다. 죄책감이랄까? 어머니가 떠나시고 나면 감당하기 힘든 또 다른 고통 때문일지. 나는 전주와 지리산을 오가면서 9월 내내 간병을 했었다. 고된 시간이었고, 그 후로 난 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았다.

  물론 나의 삶을 오로지 포기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로 결혼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나도 참 냉정했다. 그리고 약해진 마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순간에는 그나마 마지노선이 부모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가 수술했고, 아버지도 간병했었던 시간이 흘러서 5년이 되어갔다. 또 난 삼십 대에서 사십대로 나이의 앞자리도 바뀌게 되었다. 뭐 그 사이에 전라북도도 전북특별자치도로 바뀌었으니, 세상도 바뀐 것일까?

  하지만 어머니는 올해 재발하시고, 어렵게 시술을 하고는 경과를 보기 위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2024년 1월 18일에 전북에 이름도 바뀌었지만, 어머니는 완치가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매번 이렇게 조마조마했지만, 이번엔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이 바로 '산정특례연장' 때문이었다.

  사회복지를 업으로 하고 있는 나에게는 익숙한 용어지만, 중증 질환자에게는 생명수 같은 것이 바로 '산정특례 제도'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마저 없으면 어떻겠는가? 진료받으러 가는 길이 매번 돈 때문에 고통이라면 환자도 보호자도 못 할 짓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난 산정특례를 경험했고, 그 효과를 5년간 느꼈다. 단순하게 본인부담을 경감한다고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 흔한 MRI나 CT를 찍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실 병은 알게 되었을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치료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면 검사비와 약값은 치료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부담이 된다. 한마디로 힘든 몸을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버티목이랄까.


  그런 중요한 연장을 앞두고, 진료 때 의사에게 이야기했다. 병원에서 잘 챙겨주겠거니 했다면, 그건 운이다. 그렇기에 만료를 앞두고 가능한지. 또 신청서를 진료를 받을 때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기간에 여유를 두고 알아봐야 한다. 역시 그런 것들은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신청서를 뽑고, 창구에 제출만 하면 되는 단순한 것임에도 장소는 대학병원이다.

  나도 진료가 끝나고도 간호사가 알아보는 시간을 더해서 한 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솔직히 그 서류가 되고 안되고에 진료비가 차이가 심하기에 잘 모르는 어머니도 긴장을 하셨다. 5년이라는 고비를 얼마 남겨두고서 다시금 5년을 연장하는 것은 고역이지만, 해야 할 것은 그래도 하는 것이 좋으니까.


  11시 반쯤 서류를 접수하고는 공단에서 문자로 연락이 오기 전까지 전북대학병원 근처에 중국집을 갔다. 이름은 <향미각>. 지난번에 어머니가 너무 맛있게 드셨던 꼬막짬뽕을 파는 곳이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먹었는데, 어머니는 원래 매운 것을 좋아하셨다. 그럼에도 건강 때문에 억지로 참으셨던 매운 음식이었다.

  그러다 먹은 양 많은 꼬막에 매운 짬뽕 국물은 쉽게 포기하기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운맛을 중화시킬 군만두와 시원한 사이다도 같이 주문했다.

  어머니는 면보다는 일단 꼬막을 까서 먹는 것에 집중하셨다. 이곳에서는 사실 큰 그릇을 하나 놓고 가는데, 이건 먹은 꼬막 껍데기를 버리는 용도였다. 뭐랄까? 먹는데 집중한 모자는 연신 꼬막 껍데기를 버리는 소리뿐이고, 별 말도 없이 먹기만 했다.

  역시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겠지? 가끔 들리는 '씁씁'거리는 매운 호흡 속에서 잘 구워진 만두와 사이다를 먹으면서 입 안을 달랬다.


  다 먹고 배부르다는 어머니에게 계산하면서 받은 박하맛 캔디를 드리면서 약을 타러 갔다. 그사이에 문자가 왔다. 2029년 8월 4일까지 적용이라는 안내였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5년.  또 그 사이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얼마나 세상이 변할지 모르겠으나, 가끔 어머니와 함께 오는 진료 때는 함께 꼬막 짬뽕 한 그릇에 여유는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박하맛 사탕을 먹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약국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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