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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Feb 16. 2024

나는 너고, 너는 나였으니까

딸,

신기한 존재

너를 보며

엄마가 나를 보며 느꼈을 감정을 느껴보고

나도 사랑받았었구나

어릴 적을 떠올려보고

쑥쑥 자라는 모습이 놀랍고

닮은 모습이 나올 때 재밌고

의지가 되기도 하고

서로 이해되면서

싸우게 되는 존재

내가 낳은

존재의 신비.




딸이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였다. 그땐 그 하나라는 느낌이 참 부담스러웠다. 언제 혼자 알아서 할까. 이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릴 적 딸은 내게 참 관심이 많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 때 9박 10일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좋은 기회였고, 누군가 아이들 케어만 해 줄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었다. 시아버지께서 아이들을 돌봐주시기로 하고 우린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날 나는 토하며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두고 떠난다는 게 9박 10일이었지만 몸에서 반응이 올만큼 힘겨웠던 것 같다.

딸아이는 카톡으로 '엄마 사진 좀 보내' 하면서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엄마 예뻐졌다' 하는 카톡을 남기기도 했다. 여행의 절반쯤 지날 때 나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나를 그리워한다는 마음이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내게서 비롯된 마음이었을 것이다. 떠나간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견딜 수 없었던 내 마음을 딸아이도 그럴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지금이야 언제든 아이들을 두고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가끔 그때 감정이 떠오를 때가 있다. 딸아이와 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평생 내가 책임져야할 생명체라는. 귀찮기도 했지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참 좋았던 것 같다. 이제는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무언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서운함이 밀려온다. 시원한데 서운한 감정이다. 여전히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으면 마음에 근심이 밀려온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에서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딸아이는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신비한 존재이다.




그때의 나는 너에게 또 양보를 강요했더라. 반성한다. 마치 그때 못한 반항을 한꺼번에 하는 듯이 딸은 연신 나를 밀어내고 있다. 마치 내 말을 들으면 절대 안 되는 사람처럼 말이다. 사춘기 필독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말을 듣는다는 건 내게 굴욕감을 줘요' 사춘기의 특성이다. 딸이 밀어내는 느낌과 아들이 밀어내는 느낌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엄마에게는 딸이 둘이었지만, 내겐 딸이 하나라서 이 딸이 주는 영향력이 대단한 것 같다. 이젠 나를 찾아가고 있다지만, 이 딸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가 좋은 건지 과제처럼 내게 다가온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딸은 엄마의 그림자를 먹고 산다. 엄마는 자신이 못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연신 딸에게서 얻으려고 한다. 우리가 이러한 관계를 청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해결하고 통과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터득해 간다 해도 모자를 정도로 딸과 엄마의 관계는 무의식적으로 얽힌 강력한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연습할 뿐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우리는 상실해야 한다. 새로운 관계의 탄생을 위해서. 이것은 우릴 서로에게서 자유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건강한 끈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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