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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러브 Oct 10. 2023

평범의 삶

가진 것을 더 많이 보는 것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있어 보이는 듯한 단어를 선택해 본다. 조금 더 어렵게 말을 적어 내려가 본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보이기에 괜찮은 삶이었다. 평균의 삶이다. 30대 후반이라고 하면 으레 내가 생각했던, 내 이름으로 된 집은 있겠지, 결혼해서 자녀는 둘 쯤 있을 테고, 이왕이면 아들 하나, 딸 하나면 좋겠다. 커리어우먼이자 멋진 워킹맘으로 직장인과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삶. 신기하리만큼 모든 게 안정적이었다.


보이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며 친구들은 너는 다 가졌다며 말했다. 나를 찬찬히 둘러본다. 평범의 키, 평범한 얼굴, 평범한 직장, 평범한 삶. 어디 하나 뾰족한 곳 없던 내 주변 환경은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문제가 될 것 없는 삶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찾기 시작한 나는, 어디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왜 회사일은 이렇게나 바쁜 것인지, 아이들 방학에 맡길 데가 없어 스케줄을 꽉꽉 채워 짜야하는 것인지, 왜 저 고객은 저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왜 집안꼴은 정리해도 그 모양인지. 


감사의 마음이 드는 순간은 잠시, 평범한 내 일상과 내 삶이 나는 지겨워졌다. 건강한 몸, 화목한 가정, 고연봉의 대기업은 이미 나에게 익숙했다. 당연한 것은 설렘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어떤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어느 순간부터 서있을 때마다 허리 통증을 느꼈다. 병원에 다니는 것도 잠깐이었다. 침을 맡고, 치료를 해보지만 잠시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내 허리는 이미 결혼 전부터 디스크 판정을 받았었다. 처음으로 엄마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릴 때부터 허리 펴라는 엄마의 이야기는 잔소리로만 들렸다.


서있을 때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말과도 같았다. 걸을 때도 허리가 찌릿했고 서있을 때도 허리가 찌릿했다. 왕복 3시간 가까이 되는 출퇴근 시간이 나에겐 지옥과 같았다.  병원도 다녀봤지만 치료를 받을 때만 잠시 나아졌을 뿐이다. 내 몸의 문제를 외부 약물로 치료하기보다 스스로 잘못된 습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40년 가까이 써온 나의 허리, 어릴 때부터 늘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40년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허리는 바로 굽어졌고, 의식해서 억지로 펴고 올려야 세워지는 게 내 허리였다. 그렇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배와 허리,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아 바른 자세는 이런 것이었구나. 나이 먹고 이제야 바르게 앉는 법을 배운다. 


제대로 서있는 법도 배운다. 어깨가 굽어지고, 허리는 휘어지는 게 나의 서있는 모습이었다. 가슴을 쭉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서고, 걷는 것까지 배워야 하는 게 인생이구나. 사소하게 생각했던 작은 것이 쌓이고 쌓이면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구나. 세상에 결코 사소한 것이 없구나. 서서 걷는 것에서도 나는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


배우기 시작했다.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앉아서 글을 쓸 때 역시 허리가 펴지지 않아 굽은 채 글을 쓰는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놓고 글을 쓴다. 그런 자세로 글을 쓰면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 세상에 배울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많았다.


서고 걷고 하는 일상의 불편함을 겪은 후 나는 감사함을 다시 정의해 봤다. 보고, 먹고, 듣는 아주 일상적인 행위마저도 사실은 정말 큰 감사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당장 내일부터 보지 못할 수도, 듣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지고 있을 땐 당연해서 몰랐다가 잃어버리고 나면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었다. 불현듯 내가 가진 걸 들여다본다. 건강한 몸, 화목한 가족, 따뜻한 보금자리. 내가 가진 것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나의 노력이 있었고, 배우자의 노력이 있었으며, 내 부모님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엄마 아빠 없이 학교 갈 준비를 스스로 하는 아이들의 노력도 내 행복 안에 담겨 있었다. 나의 평범함은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이 행복은 어느 한 가지만 어긋나도 많은 것이 무너져버리는 것이었다. 내 상황은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불평을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많이 들여다봤기 때문이란 것을.


가진 것 vs 가지지 못한 것.

가진 것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은 불행할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보는 자세도 분명히 필요하다. 결핍에서 오는 동기부여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게 행복이었구나. 반성하는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 더 가지는 내가 되면 좋겠다. 불평 대신 감사함을 더 많이 말하는 내가 되면 좋겠다. 주어진 내 삶을 감사로 채워나가는 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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