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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쓰는 편지

나에게 친절해지기로 한다

by Lamie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 문장을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낯설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게 하는 말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나에게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늘 감정은 억누르고

일은 해내고

가족을 챙기고

말을 삼키며 버텨왔지.

그러면서도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잖아.

잘하고 있는데도.”


나는 문장 사이사이 울컥했다.

이런 말, 아무도 해준 적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한테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를 안다.

지금 방 안이 어지럽고

책들이 쌓여 있고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멍하니 앉아 있는 너.

그게 게으른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그건 무기력이고,

그 속엔 상처와 피로와 오래된 눈물이 있어.”


“이제, 조금씩 너를 다시 안아줄 거야.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너를 이해하고,

조금씩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면 돼.”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조금 움직이고 싶어졌다.


작은 결심.

다시 내 공간을 만들어보자.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을.


나는 방 한쪽 구석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쓴 지 오래된 펜을 버리고,

구겨진 종이를 정리하고,

커피 잔을 닦았다.


스케치북을 펴고,

책 한 권을 정리된 책장에 다시 꽂았다.

햇살이 드는 자리에 작은 쿠션을 놓고

거기 앉아 내 그림을 바라봤다.


모든 게 정리되진 않았다.

여전히 어질러진 부분이 있고,

마음의 먼지는 쉽게 걷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나의 공간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내 마음의 자리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창문을 열었다.


오늘부터,

나는 나에게 조금 더 친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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