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1997년, 한국에서 예고에 다니고 있었던 어느 날 나는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좀 더 큰 세상을 보고 배우게 하겠다...
아버지께서 자녀를 위해 품으신 큰 뜻이기도 했고 새로운 형태의 삶에 대한 갈증과 동경이 아버지의 마음 안에서 오래전부터 싹트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버지의 그런 의지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 때 북미(North America)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그림 그리는 것을 나의 주업으로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작多作을 하며 이름을 알린 대단한 작가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림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는 마음속에 어떤 부채감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원조를 통해, 대한민국과 캐나다라는 나라를 통해, 그리고 내 삶의 골목골목에서 만난 수많은 은인을 통해 많이 받고 배울 수 있었는데, 정작 내 평생 그것을 제대로 출력해서 돌려주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 노릇 할 때까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고, 그리고 어머니 자연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처음엔 쉽사리 글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으르기도 했고 내 경험이 어디서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독특하고 대단한 이력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대가 목전에 오자 무언지 모르지만 가슴속에 쌩한 바람이 불면서 뭔가를 내놓고 싶다는 마음,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쌩한 찬바람이 불면 과일이 익어가고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자연의 법칙이 나한테도 적용된 것일까? 그림보다 뭔가 더 정리된 상태의 무엇,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내놓고 싶었고, 그것이 책이라는 형태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영을 받을지 무관심에 밀려날지 모르지만 일단은 내 멋대로 첫 삽을 떠보고 싶었다.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미 내가 가진 재료로 요리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답은 빨리 왔다.
지금껏 내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자.
줄곧 한 길만을 걸어왔다. 어렸을 때 그림을 시작해서 예고를 나왔고 미대를 졸업했다. 물론 요즘에는 미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그림을 잘 그리는 역량 있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기에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20년 넘게 그리는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간 기록하고 느꼈던 것들을 출력시켜 보고자 한다. 나라는 개인이 경험했던 이 그림의 여정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보고자 한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지만 과거 위대한 대가들의 그림을 빌려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지금 내 눈 앞의 그림, 내가 경험했던 미술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했다. 그림의 세계가 생소한 독자분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가, 현재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분들껜 나의 경험담이 조금이라도 공감을 형성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게 이 책이 품은 작은 소망이다.
완벽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이 울퉁불퉁하고 불안정한 화가의 여정을 담은 글이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릴 수 있다면 나는 너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