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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같은 그림들 02.

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by 아난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캐나다는 빨간 머리 앤이 사는 아름다운 꽃동산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답답한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신세계, 유토피아가 있을 거란 막연한 동경을 하고 갔는데 나를 맞이한 것은 멍할 만큼 넓은 땅덩이 그리고 적막함이었다. 늘 사건 사고로 시끌벅적한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분명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소망했지만 이렇게 외롭고 적막한 신세계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캐나다에서 보낸 첫 몇 개월은 꽤나 우울했다. 마음이 방황과 우울감을 오가고 있던 그 시절, 나는 자연스럽게 한 미술학원으로 인도되었다. 미술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입시를 준비하고자 찾아간 곳이었다. 물론 캐나다라는 곳은 한국의 입시만큼 미대 입시가 치열하지 않았기에 그냥 혼자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민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막막한 마음이 컸고 그 흔들리는 마음을 집중할만한 무엇이 필요한 때였다. 그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혼자 마음을 다잡기는 역부족이었고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아닌 북미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하던 차 어머니가 수소문 끝에 찾은 한 미술학원에 가게 되었다.


한국 선생님께서 지도하시는 작은 화실이었는데, 선생님은 단 한번 보아도 오래 동안 뇌리에 남을 만큼 독특하고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주신 분이었다. 그냥 그림을 가르쳐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림과 삶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 어린 내 눈에도 단박에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인생이 기존의 장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 다리를 넘어가게 해 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것이 단순히 외국에서의 삶을 적응하기 위해서이던, 아니면 정신적 성숙의 과정이던.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는 바로 선생님께서 그 역할을 해주신 것 같다.


선생님과의 첫 면접에서 정확히 무슨 말이 오갔는지 지금으로썬 전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면접이 끝나고 ‘바로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들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어서 빨리 그림 공부를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뚜렷한 비전이 없이 지내던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새로운 그림 공부와 함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화실에서의 약 2년 정도의 공부가 그 뒤로 이어질 기나긴 내 미술 인생의 토대가 된 것은 자명하다. 어머니께 빨리 미술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덕분에 나는 바로 미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하고 틀에 박힌 석고상 데생은 이제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참가하기 시작했다. 어떤 대단한 작품을 하게 될까 설렜는데, 첫 수업에서 경험한 것들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단순한 것들 뿐이어서 잔뜩 기대했던 마음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4절지나 2절지에 큼직하게 그리던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새로운 화실에서의 수업은 A4용지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사용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짧으면 3분, 5분, 10분 정도가 소요되는 짤막한 스케치북 드로잉을 많이 했다. 거기서 조금 더 길게 그리면 40분 내지는 한 시간 안에 스케치북 위에 한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시간에 대해서 이렇듯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매번 그림을 그릴 때마다 시계를 들고 시간을 재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그 정해진 시간 안에 재빨리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그만--’이라고 하시며 드로잉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시면 그대로 종이에서 손을 떼야했다. 그림이 완성되던 되지 않던 무조건이다. 선생님께서는 '완성' 되지 않았어도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다음장으로 넘어가라 가르치셨다.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지나간 것을 붙들고 있지 말라 하셨다. 그 때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한마디가 살아보니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일임을 느끼곤 한다.


한국에서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앉아서 주구장창 석고상 하나를 바라보며 그리던 내게는 이러한 단시간 드로잉은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법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하기보다는 여러 점의 그림을 철저한 시간 컨트롤 하에서 다양하게 뽑아내는 방법이었다. 화실에서 흔히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시키는 선긋기 연습도 없었다.


드로잉 시간이 3분이나 5분 정도 주어지면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잡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리게 된다. 이 때는 내 그림이 좋아 보이는지, 어때 보이는 지 생각할 여지조차 없다. 그런 그림이 완벽할 수는 없다. 대부분 삐뚤 빼뚤, 허접함의 극치다. 기대감에 차 있었던 나는 그것이 처음엔 조금 불만이었다. 뭔가 대단한 그림을 그리게 될 것 같았는데 캐나다까지 와서 어린애 낙서 같은 그림들을 수두룩하게 그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에 익숙해졌고 어느덧 훨씬 더 재밌다고 느끼게 되었다.




Time and Universe.jpg Time and Universe, 검은 사인펜, 스케치북, 10분+20분 :시계를 들고 있는 선생님을 보며 떠오르는 상념들을 그림.



1분의 소중함

보기 좋지 않아도 되는 그림.

완성되지 않아도 되는 그림.




quick drawing.jpg 드로잉 소품으로 주어진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보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봄.


BRUNCH COVER 3-1.jpg 초콜릿을 소재로 그린 그림, 실제 초콜릿으로 색을 칠함.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

똑같이 보고 그려도 되지 않아도 된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냥 낙서하듯 마음대로

그려도 된다는 것이 해방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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