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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Oct 08. 2020

안바르기

부끄럽지 않아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화장을 하는 것도 예의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들으면 매우 불편했으나, 나이와 직급 때문인지 요즘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적을뿐더러 나조차도 그 부분을 괘념치 않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화장을 하는 것도 예의’라는 말을 들으면 늘 의문이었다. 상대방의 민낯을 보는 게 불쾌하고 불편하단 말인가? 화장을 하지 않은 본인은 불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참 말이 많다.

남자들이라면 딱히 들을 일 없는 '좀 꾸며라, 화장 좀 해라. 옷 좀 예쁘게 입어라, 액세서리 좀 해라.'등의 말들과 시선이 늘 여자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상체 속옷까지.


이런 ‘예의’에 대한 압박은 말뿐 아니라 선물에도 나타났다. 애인에게 받은 선물은 귀걸이, 목걸이, 반지와 같은 장신구가 많았고, 여자들에게서 받은 선물은 립스틱이나 향수, 가방 등이 많았다. 선물은 무엇이든 선물한 사람의 마음이 있기에 고마운 법이지만, 내게는 너무도 쓸모없는 선물이라 고맙지만 씁쓸해지기 일쑤였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생활의 많은 부분을 '단순화'시키고 '배제'했지만 그래도 치장에 대한 부분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는 것 쓰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얼굴 화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이고, 그 사람의 인상과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비즈니스에서는 그 인상으로 거래의 성사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래서 주위의 압박감과 업무 특성으로 떠밀리듯 화장을 하곤 했다. 그러나 화장을 할 때마다 다시는 화장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화장하는데 시간이 매우 많이 들었고, 화장을 입은 얼굴이 가면같이 답답한데다, 화장한 모습은 실제 내가 아닌 것 같았으며, 지우기에도 여간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니었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최소 하루의 1시간은 절약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비용도 따라서 절감된다. 덤으로 조금이나마 환경에 해를 치기까지 한다.

나는 오랜 기간, 주변에서 치장에 대한 말들을 던질 때마다 갈팡질팡하며 점차 하지 않는 쪽으로 굳어졌다.


화장에는 종류가 많다.

얼굴을 치장하는 화장이 대표적이지만, 세탁물을 향기롭게 하는 섬유유연제도 화장이다. 몸의 냄새를 가리고 좋은 냄새로 덮는 향수 또한 화장이다.

나는 이 세 가지 모두 하지 않는다. 


게으르되, 기본에만 충실하게 살자.


빨래는 세탁만 깨끗하게 하고 몸은 냄새만 나지 않게 잘 씻고 얼굴은 무엇도 바르지 않는 대신 웃는 얼굴을 연습했다.

특히 웃는 얼굴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것은 나만의 주름 관리법이다. 노화로 인한 주름을 막을 순 없다. 의료적으로 해결할 수 도 있고, 화장품들과 마사지 도움으로 지연시킬 순 있지만 언젠가는 주름을 막지 못하는 시절이 온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 여러 주름진 얼굴들을 보며 지금 내 표정이 평생의 초상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쁜 주름을 갖자.


주름은 당연한 것이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다만 어떤 주름의 형태인가가 그 사람이 안타까운지 아름다운지 결정하지 않을까? 흔히 '곱게 늙었다'는 분들의 주름은 축복받은 것처럼 그 초상이 아름답다.

그래서 앞으로 형성될 주름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아직은 내 주름이 얼마나 예쁘게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벌써 내 눈가는 주름이 가득하다. 남들이 보기엔 '관리'하지 않아서겠지만 나는 눈으로 웃기를 많이 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선택적 단순한 생활을 하는 이유가 있다.

현대인들은, 특히 도시인들은 너무 바쁘다. 바쁘지 않으면 큰일 난다. 아니 그런 줄 안다. 바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이 가만히 있게 되는 날이면 '공허함'과 '외로움'이 밀려온다. 현대인의 정서적 '질병'같은 거다. 다들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늘 자기계발을 하고 살며, 시분초 단위로 알차게 사는 것처럼 보여, 나보다 더 높게 멀리 가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시분초를 다퉈가며 바삐 살고 자신을 순수히 가질 여유가 없는 자들은 '질병'에 시달린다. 그들의 질병이 바로 '공허함'과 '외로움'이다.

학창시절부터 자신의 내재된 욕망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이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바르기보다는 벗겨내야 순수한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있어야 자신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시간을 만들려면 생활의 일부는 단순해져야 한다.

나는 그 단순함을, '바르지 않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나는 바쁜 현대인이다.


오늘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해놓고, 어스름히 동트는 모습도 지켜보고, 관심이 있는 기사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5시 50분에 집에서 나왔다.

씻고 내 몸을 치장하는 시간은 1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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