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거예요.
밀물 때에 바닷물의 움직임을 본 적 있나요?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더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갯벌이 바다로 변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놀라워요. 밀물의 속도는 최고 시속 10~15km로, 성인이 걷는 속도보다 2~3배 빠르다고 해요.
올해 제 변화의 속도는 밀물을 닮았어요. 비혼을 결심했는데 결혼을 했고, 임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퇴사를 했어요. 태어난 이후로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며 편안한 삶을 누렸는데, 지금은 아내이자 프리랜서로 매일 새로운 환경과 도전을 마주하고 있어요. 적응에 필요한 속도보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빨라서, 마치 갯벌에 깊숙이 빠졌는데 밀물이 밀려오는 상황같아요.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회사원으로 약 9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올해 5월에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가 된 지 반년이 흘렀어요. 회사원으로 보낸 9년의 시간이 단단한 땅 위를 빠르게 걷는 것 같았다면, 프리랜서로 보낸 반년의 시간은 푹푹 빠지는 갯벌 속에서 발을 간신히 앞으로 옮기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 느낌의 차이가 '직업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나 자신의 변화'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회사원에서 프리랜서로 직업의 전환을 이루며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시선의 방향'입니다. 직장인일 때, 제 시선은 항상 외부를 향했어요. 직장 상사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직 내에서 평가가 좋은 동료와 선후배의 모습을 관찰하며 따라 했어요. 회사에서의 업무는 변화와 새로움이 부재해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는 시선이 철저히 내부로 향했어요. 눈치를 볼 상사도 없고, 따라 해야 할 동료와 선후배도 없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끝없는 의문이 들었어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지?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게 맞는 건가? 내가 어떤 것을 잘하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하는 게 맞는 건가?
회사를 재직하며 병행했던 다양한 일들은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지인들의 조언이 섞인 반대를 뒤로 하고, 자신감 있게 퇴사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자 잘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뚜렷한 성과가 금방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상상 속의 저는 하늘 위를 날고 있었는데, 현실은 갯벌 속에서 바둥거리고 있었죠.
초등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만든 만화경을 들여다본 순간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해요. 동그란 통 속의 여러 유리 조각이 만들어낸 오색찬란한 빛깔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어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색깔이 있었다니!' 프리랜서가 된 직후, 그 시절의 충격을 다시 느꼈어요. '내 안에 이렇게 많은 감정이 있었다니!'
9년 동안 회사원으로서 걷는 길은 비록 단단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과 신기한 것이 없었어요. 늘 비슷한 속도로, 걷던 대로 걸으면 그걸로 충분했어요. 연차가 쌓일수록 제 얼굴에는 설렘이 사라지고, 감정은 무뎌졌어요. 호기심도 사라졌고요. 제가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기분 좋다, 기분 나쁘다' 단 두 가지였어요.
프리랜서가 된 뒤, 비록 밀물이 밀려오는 갯벌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어요. 대신 끝없이 시선을 내부로 향한 채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어요. 낯선 방향으로 쏟는 노력이었고, 그래서 더욱 깜짝 놀랐어요. 제 속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이 혼재했기 때문이에요. 만화경 속의 오색찬란한 빛깔이 바로 제 안에 있었어요.
갯벌에서 달리던 저에게는 '기분 나쁜'이라는 하나의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불안한, 겁먹은, 초조한'이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동시에 '놀란, 집중하는, 흥분한'이라는 긍정적인 감정도 다양했어요.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일수록, 자신의 감정과 친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믿을 것은 오로지 나 자신 하나밖에 없는 날것의 환경 속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지키는 방법은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었어요. 내 감정과 친해질 때,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그 덕분에 고비가 찾아와도 이를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커졌고, 처음 도전하는 일의 성과도 높아졌어요.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감정의 힘을 느낀 저는 '무드 미터(Mood Meter)'라는 도구를 알게 되었어요. 쾌적함과 활력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기반으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예요. 무려 100가지 감정으로 구분된 이 무드 미터 그래프를 보자마자 직감했어요. '앞으로 내 프리랜서 생활에 큰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말이죠.
무드 미터를 접한 이후, 매일 아침 일기를 쓸 때마다 감정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데이터가 축적되니 '특정 감정과 업무 사이의 상관성'이라는 저만의 통계도 생겼어요. 모든 감정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도 몸소 깨달았어요. 쾌적함과 활력이 낮은 감정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소중한 제 감정이, 오늘은 무드 미터 그래프의 어디쯤에 와있는지 체크하고 그에 맞게 하루의 업무를 구상해요.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에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반년 동안 겪은 감정의 유랑기를 담았습니다. 100가지의 무드 미터 감정들 중에서 프리랜서로 생활하며 가장 빈번하게 느낀 열두 가지의 감정을 짚어보았어요. 저와 같은 초보 프리랜서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세상의 변화에 맞물려 업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어요. 시기는 다르지만, 언젠가는 모두 프리랜서가 됩니다. 미래의 프리랜서 분들에게도 저의 진솔한 감정 이야기가 인생의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