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소침한|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기

파란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01. 의기소침한(Despondent)

by 쏘스유


이번 글의 중심 감정 '의기소침한(Despondent)'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언론학은 신세계였다. 학문과 현실을 잇는 커뮤니케이션 수업이 재미있었다.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가 좁게는 개인부터 넓게는 사회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언론학을 깊게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연구원의 특성상, 박사 학위가 없으니 진급에 한계가 있었다. 맡는 업무도 제한적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인데, 연구원에서는 그 성격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학위와 상관없이 승진을 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회사원이 된 후에는 대표이사 및 임원 보고를 위한 대내 보고서부터 금융감독원 등 외부기관의 보고를 위한 대외 보고서까지 각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쉴 새 없이 월, 분기, 반기, 연간 보고서를 작성하며 전문성을 축적했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는 말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람이다. 앞서 나의 14년 인생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 것처럼, 언제나 나는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를 꿈꿨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도 그 바람은 한결같다. 나는 글과 관련된 전문가가 되기를 바란다. 현재는 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하며 그 꿈에 다가가고 있다. 내가 만드는 창작물이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씨앗이 싹으로 발아할까, 초보 프리랜서는 그것을 알기 어렵다. 그럴 때에는 최대한 조바심을 버리고 여러 개의 씨앗을 동시에 뿌린다. 그 덕분에 나에게는 현재 여러 개의 업무 정체성이 있다. 여행 인플루언서로서 일을 할 때에는 '사전 조사 → 취재 → 사진 정리 및 보정 → 콘텐츠 작성 → 홍보' 단계를 반복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나만의 색깔이 담긴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는 무채색에 가까울수록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았다. 9년 동안 '색깔 빼기'에 최선을 다했는데, 반대로 '색깔 입히기'를 하려니 어색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내용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콘텐츠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의 색깔을 찾는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글 대신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 스스로도 몰랐던 글에 대한 관심까지 이끌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삶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 결혼과 매일 마주하는 신혼 생활을 중심 소재로 인스타툰을 연재한다.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글보다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글을 쓸 때 하나의 단어가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듯, 그림을 그릴 때에는 얼굴 위의 작은 선 하나가 작품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소재는 여행에 비해 훨씬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이어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예민해진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해 창작 활동을 하고 나면, 눈이 따끔하고 손목이 시큰거린다. 신분에 따른 차이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회사원일 때에는 이 과정까지만 중요했다.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이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스스로 다재다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다르다. 취미가 아닌 직업이기에, 프리랜서인 나는 그다음 단계에 더욱 집중한다. 바로 '반응' 단계이다. 내가 만든 여행 콘텐츠의 조회수가 중요하다. 블로그의 방문자수가 중요하다. 인플루언서 순위가 중요하다. 인스타툰의 공감과 댓글 수가 중요하다. 인스타툰의 공유 숫자가 중요하다. 이런 반응들이 모여, 내가 전문가로 향하는 과정에 어느정도 도달했는지 파악하는 지표가 된다.


초보 프리랜서는 씨앗 뿌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의기소침한 감정을 빈번하게 느낀다. 사람들의 반응이 적을 때에는 '시간을 쏟아붓고, 비밀스러운 감정을 드러내고, 몸이 아플 정도로 최선을 다해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사실에만 생각이 머문다. '내가 부족한가'하는 부정적인 마음도 든다. 제법 자신 있게 창작활동에 전념했는데,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고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의기소침'은 의지를 잃고 기운이 빠져 침울한 상태를 의미한다. '소(銷)'는 쇠를 녹인다는 말에도 쓰인다. '침(沈)'은 물에 빠진다는 말에도 사용된다. 절대로 가볍게 넘어갈 감정이 아니다. 무드 미터 그래프에서는 쾌적함이 -5로 가장 낮고, 활력 또한 -4로 상당히 낮은 상태이다. 파란색 사분면 중에서도 짙은 파란색의 감정이다.


나는 이 짙은 파란 감정을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회사원일 때에도 의기소침한 감정을 종종 느꼈다. 보고서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엑셀과 워드를 오가며 오탈자 하나 없는 두툼한 보고서를 완성한다.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며, 상사에게 보고서를 제출한다. "사업부 실적을 이렇게 낮게 표시하는 게 맞아?", "보고서의 형식이 항상 비슷한데 다르게 할 수는 없어?" 돌아오는 반응은 기대와 다르다. '사업부의 낮은 실적이 제 탓은 아닌데요.', '정기 보고서 형식을 제 임의대로 바꿀 수는 없는데요.' 마음속으로 따박따박 대답한다. 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한마디. "죄송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보고서를 제출할 때마다 상사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만든 보고서 속에서 항상 오리, 토끼, 모자 등을 찾아낸다.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질 때마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의기소침한 감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심한 지적을 받은 날에는 노트북을 덮고 화장실에 들어가 울기도 했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음양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역경을 겪지 않고 화목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자라왔다. 그런 성장 과정이 학창 시절에는 축복이었는데,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거절, 실패, 좌절' 등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서, 그에 수반된 감정을 오롯이 버텨내는 것이 벅찼다.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 글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갖가지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나를 들여다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은 데이터가 되었고, 데이터를 분석하니 통계 값이 나왔으며, 통계 값을 정리하니 나만의 처방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들여다보았듯, 다른 초보 프리랜서도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자신의 감정을 토닥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프리랜서로 직업의 변화를 가진 뒤, 의기소침한 감정이 들 때마다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더 이상 짙은 파란색의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회사원 시절부터 프리랜서가 된 지금까지 빈번하게 찾아온 의기소침한 감정. 내가 이 감정을 자주 느낀 이유는 타인의 반응이 나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반응이란, 자극에 대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사전에 따르면 '화학적 결합이 깨지고 새로운 결합이 형성되어 새로운 화학 물질을 만드는 변화'를 의미한다. 이렇게 어렵고 대단한 것이 반응이다. 나는 이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다.


나는 왜 반응을 기대했을까.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일을 동일하게 생각했다. 지적과 비난을 받으면, 그것이 업무의 결과가 아닌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오류의 시작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은 나지만, 최종 책임은 상사에게 있다. 상사는 엄격함으로 책임감을 내보인 것이다. 나는 나와 일을 구분해내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회사원 신분의 나는 이런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결국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에도 나와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물리적인 개념의 상사는 사라졌지만, 콘텐츠의 반응이라는 심리적인 상사가 여전히 존재했다. 매일 쓰는 일기장이 파란 감정으로 물들어갈 때쯤 깨달았다. 초보 프리랜서에게 중요한 것은 반응이 아니었다.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본질이 중요했다.


1. 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기
2. 자기 확신 회복하기
3. 다시 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기


의기소침한 감정이 들 때 중요한 것은 거리를 갖는 일이었다. 일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러니하게, 거리를 갖고 나면 일의 성과가 좋아졌다.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때 우정이 더욱 끈끈하게 오래간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친구들은 나와 가장 친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무촌 관계인 부부도 마찬가지다. 나와 신랑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책을 읽고 빨래를 갠다. 신랑은 웹툰을 보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채,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가 다시 얼굴을 마주하면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들어서 잠들 때까지 내내 꼭 붙어있는다. 스스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와의 거리를 꾸준히 갖는 것, 프리랜서라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글쓰기를 할 때마다 느낀다. 글쓰기의 한가운데 서있을 때에는 글의 완결성을 파악할 수 없다. 글에 비문이 있는지, 전체적인 맥락이 잘 연결되는지 알기 힘들다. 그래서 글을 쓴 뒤에는 잠시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쨌든 일이니 빠르게 끝내고 싶지만, 그렇게 끝내면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글쓰기와 퇴고 사이에 일정한 시간을 갖는다. 의도적으로 내가 쓴 글에서 한 발자국 거리를 갖는 것이다. 개운하게 스트레칭을 하거나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한 뒤 다시 노트북을 열어본다. 내가 쓴 글에 다시 한 걸음 다가선다. 그렇게 숨을 돌리고 글을 읽어보면, 완벽하다고 생각한 글에 오타와 비문이 많아서 깜짝 놀란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여행지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주로 전망대를 찾아가고, 전망대가 없는 곳이라면 가장 높은 산에 오른다. 그렇게 먼 곳에서 여행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전체적인 지리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돌아다닐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여행에서 길을 잃는 등 변수가 생겨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어차피 끝과 끝을 봤으니 걱정이 덜하다. 먼 곳에서 상상한 부분과 같거나 다른 점을 생각하며 여행을 즐긴다. 같으면 같아서 재미있고, 다르면 달라서 흥미롭다.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것은 늘 도움이 된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이 방법의 장점은 동일하다.


일에 대한 결과와 나라는 존재를 분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 발자국 거리를 가지면 애정이 충전되듯, 일과 나 사이에 거리를 가지면 자기 확신이 회복된다. 나의 취향, 욕망,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복기할 수 있다. 일과 나 사이의 공간에,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차오른다.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가 떠오르고, 지금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이 직업을 왜 선택했는지 깨닫는다. 퇴사를 결심하며 내 몸에서 활활 타오르던 열정과 확신이 되살아난다. 그 에너지는 프리랜서로서 업무를 할 때 연료가 된다. 일과 나 사이에 거리를 가지면, 일에 대한 성장과 발전으로 돌아온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 일과 나 사이의 거리도 자꾸만 좁아진다. 괜찮다, 당연하다. 문득 의기소침한 감정이 느껴지면, 그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일뿐이다. 그럴 때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며 거리를 가지면 된다. 한 발자국 떨어졌다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다시 한 발자국 떨어진다. 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는 순간이 잦아질수록 행복과 가까워진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스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오늘도 전망대에 올라가 나를 내려다본다. 노트북 앞에서 열심히 내 감정을 쏟아내고 정리하는 내가 사랑스럽게 보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보다도 나와 가장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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