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 02. 스트레스 받는(Stressed)
"조심~조심~" 신랑이 내 뒤를 지나가며 놀리듯 작게 속삭인다. 우리 집에는 하루에 한 번씩 '조심스러운 시간'이 찾아온다. 내가 스스로 정한 업무의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다. 이 순간은 내가 가장 큰 창의력을 발휘하며 집중하는 순간이고, 이 순간이 흐트러지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과정. '우리는 다를 거야'라고 자신하며 결혼의 달콤함만을 꿈꿨지만, 실제로 경험한 결혼의 맛은 다채로웠다. 우리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그 탓에 씁쓸한 맛도 함께 느꼈다. 서로를 향해 쏟는 사랑만큼, 차이로 인한 다툼도 주고받았다. 다툼은 주로 내가 예민한 순간에 발생한다.
신랑은 평소처럼 나를 귀여워하며 쓰다듬고 말을 건다. 나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 마음을 몰라주고 방해하는 것으로 느낀다. 초보 프리랜서답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무시하나?' 하는 자격지심까지 똘똘 뭉친 채로. 날 선 반응과 함께 애정을 거절당한 신랑, 그리고 존중이 부재하다고 느끼는 나의 마찰은 반복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갈등을 더욱 싫어한다. 프리랜서로의 변화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매일 함께 지내는 사람과 갈등을 겪는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반복되는 싸움을 중단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깊게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로, 내가 이어폰을 끼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는 신랑이 말을 걸지 않는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신랑의 마음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왜 일할 때 스트레스를 받을까.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성장을 좋아하고 성취를 즐기는 덕분이다. "평생 쉬기만 할래? 평생 일만 할래?"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단순히 일을 하기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퇴사 이유가 '일하기 싫어서'라고 예상하지만,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일하고 싶어서'라고 확신한다. 다만, 나는 나와 내가 하는 일의 가치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바란다. 회사에서는 그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나는 하나의 부품과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통제감이 들지 않는 것도 회사에서 나온 이유다. 내 일을 주도적으로 기획하며 실행에 옮기고 성과를 낼 때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방법을 제안할 때, 상사는 나를 '예의 없는 직원'이라고 정의했다. 상사가 지시하는 일과 방법만이 옳은 세계였다. 개인과 조직의 적합성이 맞을 때 회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나는 그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프리랜서를 선택했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서.
"스트레스는 과도한 요구를 받고 있는데 이를 충족할 능력이나 자원이 부족할 때 오는 반응이다." <감정의 발견>, 마크 브래킷, 142p.
'스트레스 받는(Stressed)' 감정은 무드 미터의 빨간색 사분면에 있다. 쾌적함은 -3, 활력은 +5 상태로, 앞장에서 살펴본 '불안한(Anxious)' 감정보다 활력이 훨씬 높다. 쾌적함이 낮은 상태로 활력이 높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수밖에 없다. '잘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라는 생각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니, 얼른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사하기 전부터 플래너에 계획을 빼곡하게 적었다. 심지어 프리랜서가 되고 그 계획에 또 계획을 얹었다. 블로그 1일 1포스팅은 물론, 포스팅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사진 보정 방법을 배우고 핵심 키워드를 잡는 연습도 했다. 그저 순수하게 글쓰기가 즐거워서 시작한 블로그인데,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는 본질보다 기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업무와 관련해 하나씩 만들기 시작한 인스타그램 계정도 결국 다섯 개가 되었다. 글쓰기와 출판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방방곡곡으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아무리 바빠도 협업 제안을 모두 수락하며 나를 증명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림을 배운 적이 없지만, 새로운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인스타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스타툰 한편을 그리는데 8시간이 걸렸다. 시작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오래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도전하는 내 모습보다 독자의 반응에 내 즐거움의 크기가 결정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립출판사를 만들고, 출판하기 위한 원고를 집필했다. 프리랜서가 된 후, 50일마다 성과를 분석하며 나를 채찍질했다. 이것이 모두 퇴사 후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일은 많아도 좋다. 문제는 성과에 대한 부담감이 즐거움을 넘어선 것이다.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멋진 곳으로 떠났지만 더 이상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글쓰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인정해야 했다. "나, 번아웃 온 것 같아."
온갖 변화가 벅차서 결국 울음이 터졌다. 그때 나에게 전한 신랑의 말이 마음속으로 와닿는다.
"왜 잘하려고 해? 지금은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 잘할 필요도 없고. 왜 퇴사를 했는지 늘 그 이유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어."
아기가 기어 다니려면 적어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심지어 그 시간도 개인차가 있어서, 의사는 1년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프리랜서가 되자마자 기고 걷는 과정을 무시한 채, 바로 뛰어다니는 모습의 나를 기대했다. 회사에는 상사와 선배가 있고, 성장을 위한 시스템도 갖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시절의 나는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프리랜서는 정글'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야생의 정글 속에서 달리려고 했다. '왜 나는 달리기를 못하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걷는다는 뜻의 '우보만리', 둔한 말이라도 잘 달리는 준마가 하루 동안 달리는 길을 열흘이면 갈 수 있다는 뜻의 '노마십가' 등. 꾸준함을 강조하는 현인들의 가르침이 그렇게 많은데, 나는 왜 이 중요한 가치를 무시했을까.
스트레스의 원인은 내 마음에 있었다. 회사에서 느끼는 부정적 감정의 이유가 외부에 있었다면, 프리랜서인 지금은 스트레스의 이유가 내부에 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통제감의 상실 때문에 회사에서의 매일이 힘들었는데, 프리랜서는 주체성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퇴사를 선언했을 때의 내 힘을 다시 한번 내보일 때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써도 프리랜서는 결국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스트레스는 성장을 가져온다. <프리랜서 감정 처방전> 글을 연재하는 지금도 사실 잔잔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결국,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왜 프리랜서를 선택했는가.' 지금 내가 누리는 가치를 생각한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근원을 찾아도 좀처럼 마음이 해소되지 않을 때에는 운동을 한다. 마음에 집중해도 스트레스가 찰랑찰랑 차오를 때에는 몸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 신체 감각과 주변 환경에 집중을 한다. 14년 동안 요가를 수련했던 것이 결국 건강한 프리랜서 생활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큰 스트레스가 치밀 때에는 강도 높게 필라테스를 한다. 때로는 신랑과 동네 산책을 한다. 공원의 나무를 바라보고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문득 영감이 떠오른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한 시인의 말에 공감하는 순간이다.
이번 글의 마감을 앞둔 지금도 신랑은 나를 건드리지 않고 내 글쓰기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나는 잘해야겠다는 다짐보다 글 쓰는 이 순간이 즐겁다는 마음에 집중한다. 프리랜서가 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신랑의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프리랜서가 된 덕분에, 신랑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나의 선택이 반짝반짝 빛나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