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03. 안절부절 못하는(Restless)
숨을 길게 들이마신다. 배가 불룩해지며, 몸 구석구석 에너지가 차오른다. 숨을 길게 내뱉는다. 배가 홀쭉해지며, 몸 이곳저곳 쌓인 노폐물이 배출된다. 이 순간에는 숨을 마시고 내뱉는 이 단순한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반듯하게 서서, 한쪽 발바닥을 반대쪽 허벅지 안쪽으로 갖다 댄다. 무릎은 옆으로 활짝 벌린다.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 채로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린다. 나무자세 즉, '브륵샤아사나(Vrksasana)' 수련을 하는 중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과 집중이다. 1초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곧바로 넘어지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부터 시작된 요가를 향한 사랑은 14년 동안 이어졌다. 대학교 교양수업 시간에 우연히 접한 요가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던 머릿속이, 요가를 하는 시간만큼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오랫동안 다닌 요가원은 필라테스가 접목된 강도 높은 요가 수련을 하는 곳인데, 동작을 무사히 해내려면 도통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요가원에서는 한 시간 동안 몸의 동작과 근육의 쓰임에만 집중한다. 요가 수업이 끝나면 몰입의 즐거움과 함께 잔잔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긴다. 몸의 선이 예뻐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성취감을 인생의 원동력으로 여기는 나는 요가의 매력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글을 쓸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회사에 다니면서 꾸준히 글쓰기를 병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몰입과 성취감을 느낀 덕분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데, 글을 쓰는 내 모습은 멋져 보였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질수록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회사에서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진 날이면, 글 쓰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야근까지 하는 날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까지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무런 방해 없이 고요한 시간을 즐기며 생각을 글로 옮기는 시간이 벅찰 정도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점차 걷잡을 수 없이 강해졌다. 나는 추측했다. 무당이 되기 전에 이유 없이 앓는 병인 '신병'이 있다면, 나는 '글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닐까. 무당이 신내림을 받듯, 나는 글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실력은 둘째 치고, 일단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결국 9년 동안 유지한 회사원의 신분과 작별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업으로 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은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소하게 여기기 쉽지만 너무나 중요하다. 이것이 흐트러지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진다.
오랜 요가 수련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취미로 그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자격증으로 실력을 입증하고 싶었다.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매일 4시간씩 요가 수련을 했다. 그때 내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함께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들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중에서 내가 요가를 가장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마음에 집중하니 호흡이 흐트러졌다. 자꾸만 사람들을 쳐다보며 동작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동작과 선천적으로 할 수 없는 동작을 구분해 몸을 아끼며 수련했는데, 점차 그 경계를 무시하고 억지로 동작을 해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을 억지로 따라 하다가, 결국 오른쪽 손목을 다쳤다. 그 이후로 요가를 하거나 손을 오래 쓰면 손목부터 아프다. 균형의 균열이 일으킨 참사다.
퇴사를 하고 내가 사랑하는 글쓰기에만 집중하면 마음이 행복으로만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감정보다 '안절부절 못하는(Restless)' 감정이 자주 고개를 들었다. 이 감정은 무드 미터에서 빨간색 사분면의 우측 중앙에 위치해 있다. 즉, 쾌적함은 -1, 활력은 +3 상태다. 쾌적함은 낮은데 활력은 높은 감정, 내가 왜 이 감정을 빈번하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글병을 겪는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의아했다.
나는 자타공인 '프로 계획러'라고 불릴 정도로 계획 세우기를 잘하고 좋아한다. '연간, 월간, 주간, 일간' 등으로 목표를 세분화해서 수립하고, 이를 하나씩 달성할 때마다 커다란 성취감을 느낀다. 회사원일 때에는 이 목표가 비교적 간단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목표의 90% 이상이 회사와 관련되었다. 회사원의 일이란 수동적인 것이 많아서, 목표를 세울 때 큰 부담감이 없었고 책임감도 가벼웠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일이란 주체적인 일로 시작해 주체적인 일로 끝나기 때문에, 100% 직접 구상하고 실행하며 책임져야 한다. 내가 세우는 계획이 곧 내가 된다. 욕심 많은 나는 자꾸만 균형을 흐트러뜨렸다. 계획을 세울 때에는 중심이 나에게 있어야 하는데, 자꾸만 먼저 시작한 선배 프리랜서나 유명한 프리랜서에게 중심축을 세웠다. 머리로는 실력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안절부절못한다. '내가 언제 그들을 따라잡지'하는 마음으로. 손목보다 마음이 훨씬 시큰거린다.
"공감 간극 효과(empathy gap effect)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계획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공감 간극 효과란, 목표를 이뤄가는 자신의 통제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일컫습니다." <감정의 온도>, 김병수, 248p.
책은 종종 일대일 상담을 받는 느낌을 준다. 이번에도 책을 통해 심리상담을 받았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 자신을 파악하고 나의 속도에 맞게 계획을 세우며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과정 그 자체가 멋진 일인데, 내 마음은 나에게 머물지 못하고 자꾸만 외부로 향했다.
9년 차 회사원일 때에는 내가 일하는 분야의 전문가에 가까워졌다고 자신했다. 6개월 차 프리랜서가 되니, 다시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같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일궈온 경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앞서 나간 프리랜서들처럼 걷고 뛰려면,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안절부절못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조했다. 내 몸이 두 개면 좋겠다는 바람은 플래너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매일 두 명 몫의 목표를 수립했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안절부절못하는 감정은 더욱 커졌다.
손목 보호대를 장착한 채 시험을 치르고, 통증을 참으며 가까스로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날, 선생님의 말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선천적으로 잘 되지 않는 자세를 취할 때에는 무리해서 완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도자의 역할은 잘 가르치는 것이지, 동작을 다 해내는 것이 아니에요. 나중에 요가를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는 사람이 할 수 없는 동작을 억지로 하려고 할 때에는 멈추고 다른 자세를 알려주세요."
타인을 부러워하고 쫓아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본질에 집중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요가를 할 때마다 눈을 감고 다시 내 호흡과 동작에 집중한다. 손목이 아파서 자세가 안될 때에는 잠시 멈추고 다른 사람들의 동작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때의 내 마음이 평온해서 다행이다. 이제는 내가 잘하는 요가만 하지 않는다. 기꺼이 초보자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새롭게 필라테스를 배웠다. 근력이 부족한 탓에, 복근 운동을 할 때마다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종종 산을 오르기도 한다. 등산 초보는 케이블카를 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샘솟는다. 그럴 때 나는 씩 웃으며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빠르게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Be Here Now).' 내 호흡에 집중하고 내 마음을 살핀다. 현재의 순간에 충분히 집중하니 마음의 유연성이 커졌다. 계획을 세울 때, 안절부절못하는 감정이 사라졌다.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 실행을 다하지 못하면 '내가 또 두 명 몫의 계획을 세웠구나'하며 웃음 짓는다. 이제는 유연하게 계획을 세우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
회사원일 때에는 항상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는데, 프리랜서가 된 뒤에는 몸이 유연해졌다. 요가하듯 유연하게 살아보니 마음의 부상이 줄어든다. 균형을 유지하려는 스스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줄어들었다. 겉은 말랑말랑하지만 속은 꽉 차고 단단한 내 마음에 집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