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감정 속의 초보 프리랜서 - 01. 불안한(Anxious)
머릿속 뒤엉킨 생각들로 밤새 몸을 뒤척였다. 잠을 잤지만 잠들기 직전의 피곤한 정신으로 일어난다. 뻑뻑한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본 뒤 블로그 앱을 터치한다. 지난밤의 블로그 방문자 수를 확인한다. 예상보다 적은 숫자에 작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본격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메일함에 접속한다. 광고로 가득한 메일함 속에는 기대했던 협업 제안 메일이 없다. 불안한 마음으로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는다.
프리랜서로 직업의 변화를 이룬 뒤, 가장 빈번하게 느낀 감정은 '불안한(Anxious)' 감정이다. 무드 미터의 빨간색 사분면에 위치한 감정으로, 활력은 +2이고 쾌적함은 -5이다. 쾌적함은 가장 낮은 상태인데, 활력은 높은 편이라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많다. 불안과 싸워서 이기려고 해 본 적도 있지만 방법을 몰라서 언제나 졌다. 매일 불안을 느끼는 나를 그냥 받아들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원래부터 불안이 나의 가장 오랜 친구였던 건 아닐까?
학창 시절 나에게는 부러운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아니고, 집안이 유복한 친구도 아니었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마음껏 노는 친구들이 대단하게 보였고, 수업이 끝나면 친구의 집으로 놀러 간다는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단순히 '논다’는 사실이 아니라, 얼마든지 놀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부러웠다.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스스로 만든 압박 때문에 내내 책상 앞에 앉아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식당해, 정작 공부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대학교 및 대학원 시절에는 친구들 중에서 내 가방이 가장 무거웠다. 귀여운 핸드백을 메고 다니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당장 등산이라도 갈 기세로 어깨에 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여러 권의 책, 노트북, 필기도구 등 하루 동안 다 사용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항상 무거운 짐과 함께 다녔다. 짐이 하나라도 없으면 불안했다. 짐이 없어서 혹시 내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했다. 수년간 작은 어깨에 묵직한 피로가 축적되었고, 결국 불안이 나를 정형외과 환자로 만들었다.
직장인이 되고, 입시와 취업에서 해방되었는데도 여전히 불안했다. 특히 해가 지는 저녁 무렵에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의 이유가 없었다. 실체를 알면 감정을 물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생각만으로 그치고 결국 형체 없는 고독한 싸움에 항상 졌다. 낮에는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었고, 밤에는 이불속에서 혼자 울었다. 오랜 고민 끝에 한 친구에게 불안을 털어놓았는데 '미안하지만 배부른 고민 같아.'라는 답을 들었다. 그 이후로 내 불안은 한 번도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 흐르는 대로 살던 나이기에, 내게 꼭 붙어있는 불안을 친구 삼아 곁에 두고 지냈다.
직업의 변화는 단순히 업무가 아닌 인생의 변화를 동반한다. 특히, 프리랜서가 되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주체성의 회복이다. 일이 줄어든 것에도 장점은 있었다. 나를 돌아볼 시간이 증가한 덕분이다. 내 마음에 불안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는 다른 감정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는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열 권 정도 쌓아두고 연달아 읽는 편이다. 이번에도 감정에 관한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일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천지다. 그러므로 사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실제로 일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생각하면 할수록 헛수고만 늘어날 뿐이다. (⋯⋯) 아무튼 불안을 피하려면 즉시 행동하는 버릇을 들이는 방법이 가장 좋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때가 가장 불안한 법이지, 막상 행동에 옮기고 나면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감정을 무기로 바꾸는 기술>, 나이토 요시히토, 61~62p.
프리랜서는 불안이 연관 키워드처럼 따라붙는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니 차치하더라도, 프리랜서의 삶은 왜 불안이 고정값이어야 할까. 블로그 방문자 수가 낮고 협업 제안 메일이 오지 않는 것이 불안의 이유일까. 아니,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할 행동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블로그와 메일함을 열어보는 것'이다. 이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혹은 미래의 일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온 행동이다.
세상 그 어떤 직업을 지닌 사람도 불안에서 완벽하게 해방될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여전히 회사원이었다면 불안하지 않을까? 아니었다. 회사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불안했을 것이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불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은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부터 내가 그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해하며 불안했을 것이다. 금전적인 수입 때문에 불안한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 약 9년 동안 일한 퇴직금을 계산해 재정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적지만 수입도 벌고 있다. 무엇보다 수입을 키울 자신이 있기에 불안할 이유는 없었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의 이유를 모두 꺼내 노트에 적어보았다. 이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뭉뚱그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이었다.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떡하지, 커리어가 멈추면 어떡하지,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으면 어떡하지, 퇴사한 것을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면 어떡하지' 등. 노트 한가득 적은 불안은 많지만 실체는 없었다. 모두 '~하면 어떡하지'라는 식의 가정이었다.
불안을 마주하면 그 감정에 잠식당할까 봐 두려워서 피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하니 불안이 귀엽게 느껴졌다. 불안의 크기를 알고 나니 본격적으로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 정도의 불안은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히려,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창 시절, 나는 철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목 시간에 배운 플라톤 <국가론> 제7권에 수록된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가 떠올랐다. 동굴 속 죄수가 등 뒤의 불빛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믿는 일화이다. 나는 동굴 속 그림자가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자의 실재를 마주하는 것은 두렵지만, 그 후에는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진다. 억지로 동굴 밖으로 나오면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고 낯선 환경에 고통스럽지만, 결국 사람은 적응한다. 실재를 마주하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직시하는 것. 이것이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로 직업의 변화를 이룬 덕분에 그림자를 마주하고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동굴 밖으로 떠날 용기'를 얻었다. 여전히 나는 실체 없는 불안이 커질 때면 '불안 노트'에 이유를 하나씩 써 내려가며, 나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한다. 가정이 아닌 사실에 근거를 두기 위해 집중한다.
새빨간 불안의 감정을 노트에 쏟을 때면, 나는 주로 '히사이시 조(Hisaishi Joe)' 작곡가의 음악을 듣는다. 그의 모든 음악이 훌륭하지만, 내게는 <인생의 회전목마> 곡이 최고다. 불안 속에 희망을 담은 운율처럼 느껴져서 좋다. '억지로 감정을 밝게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빙글빙글 돌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인생의 곡선처럼, 불안의 감정도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회전목마를 타듯, 그 감정을 즐겨보자고 결심한다. 불안을 느끼는 나를 쓰다듬고 안아주니, 숙면과 함께 상쾌한 아침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