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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Apr 14. 2019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 문장이 가슴을 두드렸다.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 보이는 이 문장으로 인해,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게 되었다.

서점에서 잠깐 펼쳐보았던 앞부분에서는 미국으로 입양된 검은 머리 미국인과 시를 좋아하는 일본인의 사랑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이 이야기는 ‘고독’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되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던 여자가 양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시작점 - 어머니의 존재를 찾아 한국의 진해로 찾아가고, 마치 망망대해를 부유하듯 흩어졌던 파편들을

하나씩 수집해가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어머니가 겪었어야 했을 고독과 심연을 마주한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 번이고 달라지리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
그렇게 이전에 보이지 않던 점들이 발견될 때마다 그 점을 잇는 새로운 선들이 그어졌고, 네 인생을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이 달라질 때마다 너라는 존재도 바뀌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 소녀에서. 동백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을 얻게 된 입양아를 거쳐, 아이를 낳으면 ‘희재’라는 이름을 짓겠다던 열일곱 살 여고생의 딸까지. 새로운 점들은 너라는 존재를 그처럼 가변적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고립되었던 점을 선으로 이어가자 이전까지 그녀를 지탱해주던 이들을 떠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선이 그어졌기에 그녀의 존재는 너무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라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 마음은 남녀가 서로를 떠올리는 마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억지로 입양 보내야 했던 자신의 아이에게 품은 간절한 기도이다.

보수적인 시대와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아이를 가진다.

누구는 독서 지도부를 담당하던 갓 결혼한 유부남 선생님의 아이라 하고, 어떤 이는 그녀의 친오빠로 인한 불경스러운 아이라고 한다.

불편한 상황과 무거운 이야기로 인해 그녀는 사람들의 심연에 갇힌다.

그녀의 의지가 아닌, 사람들의 무관심과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한 유부남 선생의 아내로 인해 아이는 타국으로 보내진다.

그 후, 그녀는 파도처럼 몰아치는 그 일을 멈출 수 없었기에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종국에 그녀의 아이는 그녀보다 어른이 되어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도 심연에 대해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

그 멀고도 공허한 간극을 매우려고 할 때

불가능한 일이지만 희망을 품고 그 심연을 건너려고 한다면 그저 그 심연을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더 나은 순간들을,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두 명의 소녀를 불우한 유년시절로부터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인물들의 입과 호흡을 빌려 말하는 그의 생각들이 너무나 애절하기에 그 깊이가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심연에 대해서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그 공간을 건널 수 있을지,

날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덜 고독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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