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쇼핑하지 않는 20대 여성의 옷장을 공개합니다

#나의제로웨이스트라이프 <새 옷 사지 않기 프로젝트>

by 이소연

"쇼핑은 안 할 건데, 예쁘게 입고 싶어!"


이런 내게 언니는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했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사지 않고 입던 것 입으면서, 어떻게 예쁠 수 있냐는 거다. 친구들도 쇼핑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냐고 걱정했다. 그런데 헌 옷을 입어도 예쁠 수 있다! 나는 옷을 잘 입지는 않지만, 헌 옷이 가득한 내 옷장이 좋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공개하는 내 헌 옷 #OOTD #outfitoftoday. 쇼핑하지 않는 20대 여성의 옷 입는 법을 공개합니다!



엄마 옷 입기


IMG_1886.jpg 20년 정도 된 엄마 블라우스

Lucky Us! 복고가 유행이다. 굳이 굳이 여러 샵을 돌아다니며 복고스러운 아이템을 찾을 필요가 없다. 엄마 옷장을 열어보면 득템할 수 있으니까! 사실 엄마 옷을 입으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그날 하루가 참 소중해진다. 험한 욕이나 장난, 부끄러울 만한 언행도 자제하게 된다. 난 미국에 갈 때 엄마 옷을 잔뜩 가지고 갔는데, 좋은 곳에 가도 맛있는 걸 먹어도 항상 엄마와 함께 하는 것 같아 좋았다. 중요한 발표를 할 때도 꼭 엄마 옷을 입었다. 멀리서 응원을 받는 것만 같았고,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엄마한테 보내면 참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IMG_6992.jpg
IMG_2977.jpg
엄마가 젊었을 때 입던 치마를 줄여입었다

업마 옷이 너무 크거나 작아 몸에 맞지 않다면? 수선해서 입으면 된다! 나는 엄마의 롱스커트 허리와 품을 줄여 입었는데, 훨씬 예쁘고 편하게 입을 수 있었다. 수선비는 스커트 당 약 7000원 정도 들었다. 절개나 라인을 새로 잡을 수 있으니, 리폼해서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롱스커트는 유행을 타지 않고 쭉 기본템으로 입을 수 있으니, 나도 잘 입다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물려줄 날이 오려나?




쇼핑하고 싶을 땐 중고 옷 사기


IMG_6668.jpg 빈티지 가게가 많아져 행복하다

옷장에 있는 옷이 질린다면? 헌 옷을 쇼핑하러 가면 된다! 요즘엔 빈티지 가게가 정말 많다. 너무 많아서 약간 화가 날 정도로 많다. 중고 옷을 둘러보다 보면, 이렇게 많은 옷이 버려질 뻔하다니! 하고 아찔해진다.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 당근마켓까지 있으니, 온라인 쇼핑의 범위도 넓어졌다. 중고 옷을 사는 것도 결국 소비-생산 라인을 촉진시키는 게 아닐까, 고민한 적 있지만. 그 정도로 스스로 빡빡하게 굴진 않기로 했다. 새 헌 옷을 입고 싶을 때도 있다고!


3E391DC6-8232-4002-B385-1A54FEBD7C04.JPG
IMG_7013.jpg
IMG_0675.jpg
모두 중고로 구입한 상의 옷이다, 가격은 모두 1만 원 이내

중고 옷 쇼핑이 일반 쇼핑보다 더 재미있는 건, 내게 꼭 맞는 사이즈 색감 재질 느낌의 옷을 찾으면 인연이라도 만난 듯 순식간에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 나와 건조하게 걸려있는 옷 중 하나를 무덤덤하게 결제하는 게 아니라, '어머! 이 옷은 완전 내 거야! 이런 옷을 찾아내다니!' 하는 격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한 건 덤이다.



친구랑 옷 바꿔 입기

IMG_9436.jpg 상의는 친구 옷 / 하의는 중고 옷

이 니트는 6년 전?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받아온 니트다. 너무 크고 평범해서 싫다며 버리겠다 내놓은 건데, 내 눈엔 이만한 기본템이 없어 보였다. 버릴 거면 나 줘! 하고는 가져와서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입고 있다. 그리고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옷장을 구경하며 가지고 싶은 걸 가져가라고 하기도 한다. 친구가 고른 옷이 최근 1년 간 입지 않은 옷이라면 웬만하면 준다. 친구가 잘 입지 않는 옷을 내가 잘 입는 것도 좋았으니, 내가 잘 입어줄 수 없다면 친구가 잘 입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IMG_6840.JPG 검은색 나시 원피스


이 원피스도 친구 옷. 평범한 옷일수록 이렇게 저렇게 내 멋대로 매치해서 입을 수 있어 좋다. 친구 옷이라 그런가 더욱 애착이 간다. 무려 생일에 친구 옷을 입었다구!



옷 오래 입기


IMG_9942.jpg
IMG_6524.jpg

옷을 한번 사면 오래오래 잘 입는 게 가장 좋다. 세탁만 꼼꼼히 해도, 또 계절마다 옷 관리만 잘해도 오래 입을 수 있다. 만약 옷이 질리거나 스타일이 바뀌어 잘 안 입게 되면, 용도를 달리 해 입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여름에 입던 나시를 운동복으로 입거나, 기장이 짧아진 원피스를 밑단을 잘라 반팔처럼 입었다. 멀쩡해도 안 입게 된다면 아름다운옷가게에 기부하거나 당근마켓에 파는 것도 괜찮다.




화려한 액세서리 하기

IMG_8899.jpg

너무 유행을 타는 옷이나 화려한 옷은 오래 입기 힘들다. 그래서 기본템을 많이 입는 편인데, 때로는 화려하게 '나 오늘 신나!'하고 꾸미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땐 엄청나게 화려한 액세서리를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같은 옷이라도 액세서리가 달라지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아직 귀걸이는 중고로 사본 경험이 없는데, 목걸이나 반지 등은 빈티지샵에서 오히려 더 과감하고 화려한 것을 찾을 수 있어 좋다.





내가 새 옷을 사지 않는 이유


싸도 너무 싼 가격이 수상했다. 미국에서는 두꺼운 겨울 옷도 clearance 세일 존에 들어가면, $1.5로 가격을 내려도 옷이 안 팔린다. 옷이라기보다는 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창고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역을 오가다 보면 5000원, 1만 원에도 살 수 있는 멀쩡한 옷이 가득하다. 며칠 몇 달 몇 년을 입을 수 있는 옷이 커피 한 잔 값보다 싸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더욱 수상한 것은, 이렇게 싼 옷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옷이 아니라는 거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옷이 만들어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큰 나라로 팔려나간다. 누군가의 노동, 누군가의 생명을 부당하게 착취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가격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나는 누군가를 착취하여 만든 옷은 입고 싶지 않았다. 내 옷의 진짜 가격이 궁금하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he True Cost>를 추천한다(내가 쓴 후기).


착취의 대상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옷은 대부분 석유화학에서 뽑아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데, 제조부터 염색, 유통, 폐기 과정은 모두 고스란히 환경에 부담이 된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가 패션 산업에서 나온다. 그나마 '윤리적인 소비'가 유행이라 다행이지만, 동물을 키우고 죽여 옷을 만들어 입는 게 유행이던 시절에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 공장'도 운영됐지 않은가.


쇼핑을 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가끔 새 옷과 가방, 신발이 탐날 때도 있다. 다만 누군가를, 혹은 자연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침해하며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은 없다.



ⓒ 2021. 이소연 All Rights Reserved. 사진이나 글의 무단 도용 및 복제를 금합니다.


� MAGAZINE "내 꿈은 환경운동가"

일상 속 환경오염에 대한 단상을 나눕니다.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려고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