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ul 12. 2021

그 날개는 결국 우릴 추락시킬걸

패스트패션 쓰레기와 옷이 날개라는 말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이카루스, 자우림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고 싶었다. 빛나는 태양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섬유조각을 덕지덕지 엮은 밀랍 날개는 뜨거운 열기에 다가갈수록 흉하게 녹아 바다로 떨어질 게 뻔했다. 딱 1초. 1초였다. 화려해 보이던 내 날개가 가짜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가짜 날개를 기꺼이 불태워야 더 높이 날 수 있단 걸 어렴풋이 알게 된 순간.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던 3년 전 그 순간.


사람으로 태어나, 소비자로 자랐다.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오죽 많으면, 오늘 뭐 입지? 오늘 뭐 먹지?가 일생일대 고민이다. 택배 상자를 기다리는 게 시대를 관통하는 기쁨으로 여겨지고,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쯤은 ‘시발비용’으로 해결한다. “어머, 언니. 옷을 뭐 얼마나 오래 입으려고 그래. 한 계절 입고 버리는 거지, 뭐.” 누구도 멀쩡한 옷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행복한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옷에는 유통기한이 있나? 빵과 두유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상하니까. 상한 걸 먹으면 배탈이 나니까. 그럼 석유에서 뽑아 만든 석유화학 물질인 옷은? 옷은 상할까? 


2021 S/S Season. Special Edition. 

그럴싸한 유통기한이 옷에도 찍힌다. 그래서 옷은 상한다. 먹다 남긴 빵보다도 더 빨리 상한다.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배탈이 나는 것보다 촌스럽다, 찌질하다는 얘길 듣는 걸 더 못 견디게끔 자랐다. TV와 유튜브에는 올해의 컬러와 패턴으로 발끝까지 치장한 사람들이 나와 환하게 웃는다. 화려한 쓰레기를 장갑까지 끼고 벗겨내는 일에는 ‘언박싱’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매일 같은 해가 뜨고 지지만, 패션업계에선 매일 매 계절 다른 해가 뜨고 진다. 마침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잠들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매일 달라지는 해를 좇기 위해 날개를 깁다 잠든다. 퍼런빛을 뿜어내는 스마트폰 화면 속, 손끝으로 만져본 적 없는 옷을 장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눈은 생기 없이 바짝 마른다.


2019년, 난 합리적인 소비자였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인터넷에 가격과 후기를 철저히 따져 최저가로 물건을 샀고, 환경에 꽤나 관심 있는 요즘 애들답게 가죽이나 모피처럼 동물성 제품은 사지 않았다. 미국에서 분리배출과 재활용 실태를 연구하던 나였지만, Clearance 80% Sale은 참을 수 없었다. 난 퇴근과 함께 대형 쇼핑몰 투명 유리문 사이로 사라지곤 했다.


핑계가 아니라, 미국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는 세일을 정말 무섭게 한다. 옷을 미처 매대에 다 진열하지 못해, 옷인지 섬유 덩어리인지 알기 어려운 뭉치들이 매장 곳곳 쌓여 있다. 옷에는 닳디 닳은 가격 택이 간신히 매달려 있는데, 가만 보면 빨간 가격 스티커가 겹겹이 덧대어 붙어 있다. 가격을 내려도 내려도 팔리지 않았단 뜻이다. 사람들은 양껏 집은 옷을 먼지가 가득한 검은색 매장용 장바구니에 쑤셔 넣었다. 나 역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모래알에 격하게 뻐끔대는, 어항에 갇힌 물살이처럼 분주해졌다.


그날은 4월이었지만, 얇은 나시 원피스를 입어도 땀이 줄줄 나는 더운 날이었다. 매장 유리창 너머에는 털이 풍성한 겨울옷이 가득했다. 또다시 쇼핑몰 투명 유리문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끈적한 땀이 옷 먼지와 엉겨 붙었고, 마침 마음에 쏙 드는 패딩을 하나 발견했다. 부드러운 솜털과 깃이 가득한 패딩. 달려있는 택을 뒤집어 확인해보니 가격은 $1.5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1.5. $1.5. $1.5. $1.5. $1.5. $1.5. $1.5. $1.5. $1.5. 갑자기 $1.5라는 숫자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빨려들었다. 옷이 뿜어내는 먼지가 가득한 공기, 무덤처럼 쌓인 옷을 파헤치는 사람들, 내 어깨에 축 처진 채 매달려있는 ‘건진’ 옷들. 내가 여기에 올 때 지하철 교통카드에 $3.5 정도 찍혔는데, 넌 어떻게 지하철값보다도 싼 몸값으로 여기에 온 거니? 이게 가능한가?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싼값의 비결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가격은 ‘가짜 가격’이었고, 옷을 만드는 데 드는 ‘진짜 비용’은 다른 이에게 전가됐다. 주 7일 12시간씩 일하며 한 달에 4만 원도 받지 못하는 방글라데시 여성 의류 산업 노동자에게 조금, 비정상적인 목화 수요를 감당하느라 땅에 화학비료를 들이부어야 하는 농부에게 조금, 유전자 조작 목화로 파괴되는 생태계에 조금, 옷 제작·유통·폐기하는 과정에서 오염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에게 조금. 그렇게 조금씩 나눠 부담하면, 내가 한여름에 뽀송뽀송한 털이 달린 패딩을 17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사고 야무지게 적립금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8층짜리 건물 라나 플라자가 무너졌다. 11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의류 산업 재앙 중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꼽힌다. 같은 해, 방글라데시에 제조회사를 둔 미국의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역대 최고 이익을 기록했다. 내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힐링’하고 있을 때, 나와 비슷한 또래 여성 노동자들은 무너지는 건물에서 죽어갔다. 그들은 안전한 업무 환경을 보장받지 못했을뿐더러 쉬는 시간 없이 하루 14시간 일해도 5살 아이를 데리고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수준의 임금을 받아야 했다. 패스트패션 산업이 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말은 그래서 헛소리다.


    매일 공장에서 옷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값싼 인력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양의 목화가 필요하다. 그럼 목화 농장의 호황이 아니겠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유전자 조작) 콩떡이다. 자연에서 목화를 기르는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폭발하는 목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 유전자 조작 면화를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전자를 조작할수록 농부들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땅에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살충제나 합성 화학비료 사용은 짧게 보면, 중병이나 기형아 증가로 이어진다. 멀리 보면, 토질이 바뀌어 토종 씨앗은 영원히 자랄 수 없게 된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지역 생태계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면화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인도에서는 15년 동안 농부들 약 25만 명이 자신의 밭에서 자살했다. 30분에 한 명꼴로 사람이 죽은 거다. 그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문제는 ‘예쁜 쓰레기’로 전락하여 버려지는 옷들이다. 전 세계 인구가 약 80억 명인데, 1년 동안 전 세계가 사들이는 양만 800억 벌에 달한다. 사람들은 멀쩡한 옷을 버리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의류 수거함에 옷을 차곡차곡 넣겠지만, 버려지는 옷들은 중고시장에서도 절대 다 팔릴 수 없는 양이 된다. 결국 섬유 쓰레기Pepe가 되어 개발도상국에 ‘기부’라는 이름으로 버려진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옷 생산을 당장 멈춘다고 해도, 인류가 수백 년은 입고도 남을 양의 옷이 이미 지구에 나와 있다.

    값비싼 옷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명품은 처절한 파격 세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옷이 남으면 그냥 불태운다. 누구나 숭배할 만한 고귀한 가치로 승격시키기 위해, 팔리지 않고 남은 재고는 모조리 불태운다. 어느 브랜드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악어농장에서 새끼 때부터 악어를 기르는데, 악어를 키우고, 먹이고, 죽이고, 가죽으로 가방으로 만든 후에 태워버리는 거다. 소각장에서 새까맣게 타들어 간 명품만 수천억 원에 달한다. 

낡은 가격표와 눈이 마주친 그 1초, 내 마음은 요동쳤다.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건 아니었다. 죄책감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열린 거였다. $1.5 뒤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며, 마음이 약해진 거였다. 감당하기 버거운 사실들이 느슨해진 마음 사이로 썰물처럼 밀고 들어왔지만, 나는 물을 머금은 해안가 모래처럼 단단해졌다.


우리는 일상 속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뿌리가 잘린 채 꽃을 피우는 프리지아 꽃줄기를 보며, 좁은 뜬장에 엎드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를 보며, 석쇠 위 돼지 껍데기에 박힌 털들을 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은근한 생명력을 목격할 때, 우린 마음이 쉽게 약해진다. 그럴 땐 마음을 마음껏 무너뜨리자. 일렁이는 파도에 마음을 맡겨 보자.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린 가장 강해진다. 


이후 나는 3년째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다. 친구와 서로 안 입는 옷을 바꿔 입거나 오래된 엄마 옷을 물려 입으며 매일 ‘옷 안 사기’에 도전한다. 이런 소소한 결심은 무동력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만큼 대단하고 근사한 일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작은 도전이다. 매일 하는 거니까, 자주 실패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오늘 그리고 또 오늘 그렇게 하루하루 도전해본다는 거다. 관성처럼 소비자로 자란 내게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도전해보는 거다. 약해지고 무너져 내린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우리의 거듭되는 도전과 실패를 너그러이 받아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것. 그 안에서 기쁨과 아름다움, 소중함을 찾는 것. ‘돈’이라는 쉽고 간편한 수단으로 나의 기쁨, 슬픔, 분노의 감정을 함부로 치환하지 않는 것. 앞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 볼 생각이다. 이건 빛나는 태양 빛에도 녹지 않는 진짜 날개니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 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이카루스, 자우림

        

이전 01화 쇼핑하지 않는 20대 여성의 옷장을 공개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