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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Sep 29. 2022

“어디까지가 사랑이죠?”


“막상 뭍으로 나와 아무 일 아니라고

깨달을 걸 알면서도, 여전히

파도 틈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가 않아요.”


“알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이 자주 들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고요.”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니

더 깊어지고, 쉴 새 없이 파도처럼

불쑥불쑥 밀려와요,

‘사랑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요.”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수백 가지 질문을 덧대었다가, 한 호흡에 정리해 보고자 당신을 중심으로 몇 바퀴를 돌았다. 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다 이내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 상실의 문제였음을 깨닫는다. 날 강하게 끌어당기는 당신으로 인해 마음의 나침반은 고장 난 채로 방향을 잡지 못한다. 당신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며 제자리만 몇 번을 맴돈다. 나설 수도 물러설 수도 없이, 내 마음인데도 다룰 수 없는 이 난감함에 비참하게 설레고 아늑히 슬퍼지는 양가의 감정에 쉴 새 없이 흔들린다. 그럼에도 당신만 알아준다면 길 잃어도 좋겠다는 핑계 하나로, 오늘도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 곳에서 홀로 붕괴된다.


“저는요,

나를 무너뜨리고 있음에도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

라고 생각해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이기심이라도 당신을 향해서라면

외치고 바라게 되고, 그 와중에 스스로

깨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그런 거요.

이뤄지고 함께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존재를 뒤흔드는 태풍 같은 거겠죠?

‘나’는 없어도 돼요,

나를 기억하는 ‘당신’만 있으면 되는 그런 거요.”


“그럼 현존하는 내가 아닌

나에 대한 기억이 사랑이 되길 바라는 거겠네요?”


“시간이 무용지물이 되는 거 아닐까요?

그 사람과 온전히 하나 되는 순간이 아니고선

나라는 존재도 의미가 없는.”


그러다 문득  마음이,  시간이 흐르지 않고 그대로 박제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동하는 아름다움이 영원처럼 포장되면 사랑을 곡해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듣고 있던 그도 한참 고민하다 우려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남은 상처 아닐까요?

존재의 부정은 대부분 그런 의미이니까.”


“그래서 붕괴되는 거겠죠?”


흉지기 전까지 상처인 줄 모르고, 볼 때마다 가슴 저리게 떠오르는 잔상을 ‘사랑’이라고 부르려면 밑바닥 어디까지 더 무너져야 하는 걸까?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피를 흘리는 마음은 호된 사랑에 얼마나 무뎌져야 가능한 걸까? 파도 내음 같은 습한 기분이 몰려왔다. 무너져도 다시 다지며 쌓아올린 마음이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주저앉고 싶어졌다.


“이 질척한 습도보다 구질구질해요, 제 마음이.”


“어째서요?”


“보잘것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착각하니까요.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움받는 게 편하겠어요.”


나라는 모래가 바스러져 무너진 자리로 당신이란 파도가 들이치는 걸 먼 거리에서 그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단정한 모습을 잃은 나를 보며 그 사람이 넌지시 물었다, 아마도 오늘 중 가장 차분한 목소리로.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분명한 해답을 찾으려 몇 날 며칠을 사랑만 생각했는데, 여전히 길을 잃은 상태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내 마음조차 모른다는 게 우스웠다.


“어디까지가 사랑일까요?”

“글쎄요,”


3초도 안 되는 짧은 정적 끝에 그가 문장을 맺었다.


당신이 주저하는 마음에서
한 뼘 더 앞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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