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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Oct 26. 2022

만남과 이해의 바깥면


한여름에 눈이 내렸다. 그날 부엌 건너편 창가로 소리 없이 복닥거리며 내리던 함박눈이 바깥의 장마 대신 마음에 펑펑 내렸다. 습기 틈으로 시원한 한 줄기 공기가 스쳤다.


당신이 오면 눈이 내려요.


같은 곳에서 빗방울 세듯 창밖을 바라보던 그 사람이 돌아봤다. 무슨 말일까 싶은 얼굴을 하고선 잠시 눈을 맞추었다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바깥의 장마로 시선을 던진다. 우리가 처음 서로를 알게 된 날도 함박눈이 내렸다는 걸 기억하는 얼굴인가. 되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좋아한다는 말이요.”


당신이 계절이라면 난 겨울만을 기다리고 싶었다. 하지만 계절은 꽉 찬 한 해를 지나 돌아오는 존재라서 이 마음은 가끔 떠나는 여행처럼 드나들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당신으로부터 매일 한 걸음씩 더 멀어진다. 무채색일 수 없는 내 마음으로 당신의 존재에 덧칠하고 싶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 빛나는 당신의 색채를 원 없이 먼 풍경으로 마주하고 싶어서. 매번 한두 걸음 옆에 있던 당신이라는 풍경을 그대로 스노우볼 안에 담아두고는, 추억이 내릴 때마다 흔들어 본다. 그러다 이내 같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자 액자 안에 걸어둔다.


중요한 것은 만남이 아니다. 그 만남을 위해 내가 내걸은 수많은 행운과 그 틈에 빛나는 우리 사이의 거리다.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은 이 거리가 어느 순간 맞닿는, 눈과 비 같은 순간. 지금은 액자에 걸어둔 그 순간과 가끔 시선이 마주칠 때가 있다. 글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받냐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당신이었던 모든 시간들을 다시 되새기며 영감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정리된 것과 기억이 정돈된 것은 다르고, 순간을 기억하는 것과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 다르며, 단상을 떠올리는 것과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 다른데 그 난해함을 펼쳐 설명할 수 없었다. 이렇게 몇 걸음 떨어진 액자 안에서만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단일한 색채들이 기억에 맞닿고 있다.


우습게도  액자 안에 당신은 있으면서도 없다. 그저 액자 너머 기억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당신이 있다. 지금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귓가에 닿는 목소리가 말하고자 하는 문장보다 먼저 마음에 도착한다. 문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또박또박 전해진 단어들이 귓가에 비눗방울처럼 흩날린다. 가볍게 빛을 내며 떠오르는 단어의 모양들이,  또렷한 목소리들이 이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얼굴에 그려진 미소 근처에 맺힌다. 들리는 것은 목소리일 , 말이 되지 못한다. 이해될  없는 음성들이 된다.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뚜렷이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단어마다 음절마다 그 호흡을 이해한다. 들숨과 날숨의 연결에 미약한 움직임이 단어를 이룬다. 그 단어에는 무게가 없고, 의미가 없다. 그저 목소리만 존재한다.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을 자꾸만 놓친다.


미안,  들었어요. 뭐라고요?”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내가 다시 되물으면 좁은 호흡이 목소리를 돌돌 말아 다시 내뱉는다. 그러면 나는  읽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목소리의 자취를 쫓는다. 어긋난다, 존재에 대한 애정은 이해와  거리에 있다. 당신을 이해할수록 나는 사랑과 멀어지고, 당신을 사랑할수록 이해할  없게 된다. 멈춰있는 목소리의 형태를 따라 이해가 아닌 사랑을 그린다. 사랑하지 않아야지만 나는  단어들을   있다. 이해 없이, 말이나 문장이 아닌  목소리가 구성한 호흡의 음절을 사랑하고 이에 안주한다.


액자 속에 걸어 둔, 지금이 아닌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당신이 말을 하고 있다. 벌려진 입술 틈새로 퍼져 나오는 목소리가 문장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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