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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23. 2023

고통을 질료로 삼다

우리는 공허한 운명을 향해 인간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들과 마지막 질문들에 집중된, 독침 같은 질문 세례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글을 쓴다. (...) 그건 동일한 비극이고 동일한 표류인데, 끔찍한 주제가 말하는 자를 언제나 능가하기 때문이다.     

- 엘렌 식수 지음, 이혜인 옮김, 『아야이! 문학의 비명』, 워크룸 프레스, 2022, 84~85쪽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특히 그 죽음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압도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삶과 죽음을 표현할 적확한 단어와 언어를 찾기 위해 애썼으나, 언제나 백지 앞에서 망설이고 배회하는 시간이 더욱 길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어둠의 비밀을 누설하는 법을 배웠다. 세상으로 흘러나온 핏기 어린 비밀들은 더 이상 비밀 아닌 비밀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로부터 배워 발설하는 이 말들은, 이 언어들은 누가 쓰는 것인가? 엘렌 식수의 말대로 “버지니아 울프일까, 처녀일까(virgin), 늑대(wolf)일까, 사자일까, 비단구렁이일까, 나일까, 내 어머니일까?”(같은 책 85쪽)

어머니는 삶의 공허를 일깨우는 질문으로 나에게 비수를 꽂고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붓에 찍어 글을 쓰게 한다. 글을 쓸 때는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글을 쓸 때의 나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샤먼이나 무당의 심정이 된다. 누군가의 고통을 질료로 삼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진실하지 않으면, 그 고통을 그대로 대변하지 않으면, 나는 상처나 고통을 전시하여 동정을 구하거나 피고름 나는 자기 상처를 핥고 또 핥는 무력한 변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고통을 대변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애초에 나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앞으로 나간다. 마치 뱀이 기어가듯이. 뱀이 이 땅을 사랑해 대지를 기어가듯 나는 그녀를 사랑해 그녀를 위한 언어를 찾아 기어 다닌다.     

내가 책을 읽는 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위안을 받자고 책을 읽는 게 아닙니다. 난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이니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이해해야 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숨겨진 삶」, 『작은 파티 드레스』, 1984Books, 2021


나는 그녀의 폐허 위에 삶을 재건하려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 내가 꾸는 꿈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글쓰기라는 공간에서만 오직 가능하다. 나는 그녀의 고통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내가 하려는 일들을 그녀는 야생의 노루가 제 새끼를 바라볼 때의 그 무심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밤이면 나를 압도하는 드넓은 바다의 파도 소리. 더 먼 곳으로, 더 멀리 떠나라고 나를 종용하는 저 바다. 삶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 것인지, 바다는 말해준다. 멀리서 반짝이는 고기잡이 배의 등불은 내가 유일하게 생생하게 맛보았던 누군가의 고통이다. 망망대해의 어둠 속에서 저토록 찬란히 빛나는 불빛을 나는 바라본다. 어머니의 울음소리처럼, 손길처럼 바닷바람은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간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당신의 고통을 통과한 뒤에는 무엇을 써야 하냐고 물었으나, 바다는 말이 없다. 바다와 하늘은 저 불빛들을 부드럽게 감싸고서 고통을 고통인 채 바라보라고 할 뿐이다. 언젠가 내가 파리에서 체류 중일 때 나의 생일을 맞아 당신이 보내온 한 통의 문자. ‘우리 딸 사랑해.’ 어머니가 글자의 형태로 또박또박 적어 보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기 일주일 전 급작스럽게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나를 껴안고 사랑한다고 외쳤던 당신. 당신의 사랑한다는 말은 마치 비명과 같았다. 무엇이 당신에게 그 소리를 내도록 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울음’이었다. 당신의 내장에서부터 토해져 나오는 마지막 비명이었다. 당신은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완전한 사랑을 얻었다. 당신의 비명은 내 영혼에 뿌리 박혔고, 나는 그 소리의 울림을 여기에 적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처럼 야생노루, 늑대, 뱀, 개구리, 고라니, 다람쥐, 까치, 직박구리, 까마귀, 살쾡이, 멧돼지, 너구리, 반달곰, 부엉이, 민물송어, 달팽이, 벌, 나비, 떠돌이 개, 고양이, 왜가리, 두더쥐, 사막여우, 도마뱀, 낙타, 전갈, 돌고래, 거북이, 해파리, 바다표범, 남방큰돌고래, 귀신고래, 흰수염고래가 될 것이다. 당신은 도시, 산, 바다, 사막, 그 어디에도 있다. 내가 걷는 곳마다 당신이 있다. 그들이 새끼를 낳고 품었듯이 나는 당신을 낳고 품을 것이다. 당신의 부재 속에서 나는 당신을 더욱 선명히 느낀다. 당신의 고통은 더욱 생생하고 투명하게 내 안에서 작열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히스테리’라 불렸던 당신의 고통에 대해서, 나의 고통에 대해서, 여성의 고통에 대해서 말할 때가 됐음을 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이 자궁에서 연유한다는 이상하고 기이한 역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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