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이형성증, 진료의 길 위에서

병명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는 사실

by 소윤담

소견서를 받은 날, 나는 주저 없이 퇴사했다.

진단의 충격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그 병원에서 계속 근무하고

내 기록이 남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퇴사 후 2주 뒤, 상급병원 산부인과에서 첫 진료를 받았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가져간 기록과 소견서를 살펴보더니 초음파와 세포검사를 진행했고,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환자분, 생각보다 육안으로 봐도 상태가 심각해 보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주일은 끝없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CIN3 진단을 받았을 때,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무기력했고, 왜 그렇게 쉽게 지치고,
사소한 일에도 이유 없이 예민해졌는지…
비로소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몸이 보내던 작은 신호들을 나는 그동안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요즘 그냥 좀 힘들어서 그렇겠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내 몸은 오래전부터 조용히, 끈질기게,
“지금 이상해. 나 좀 봐줘.”
하고 말하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나는 늘 카페인으로 하루를 버티고,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운동이라고는 숨 돌릴 틈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생활과 CIN3라는 진단이
내 몸을 얼마나 지쳐 있게 만들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 모든 피로와 무기력은
결국 ‘너 지금 많이 힘들다’
내 몸의 마지막 신호였던 거다.


병원에서는 세포 이상이 있어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머릿속은 수천 번의 생각으로 엉켜버렸다.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유튜브를 밤새 뒤졌다.
좋은 후기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사람이 불안해지면
가장 나쁜 이야기만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혹시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미혼인데… 임신은 가능할까?”
생각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주일 뒤, 다시 진료실 문을 열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눈빛만으로 결과를 직감했다.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


“환자분, 이렇게까지 몸이 신호를 보냈을 텐데…
왜 이제야 오셨어요.
조직검사에서 P16 양성, 자궁경부이형성증 CIN3 단계입니다.
빠르게 원추 절제술 해야 해요.”


그 순간, 말은 들리는데 의미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조산 위험’, ‘자궁경부가 짧아진다’ 같은 설명은
눈물 속에서 흐릿하게 지나갔다.

원추 절제술은 자궁경부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이다.
나중에 임신을 하게 되면 조산의 위험이 있어 가능한 최소 범위로 절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스스로를 탓하기보다그동안의 나를 천천히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늘 바쁘고, 지쳤고, 몸이 내는 신호보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해 살아왔다.
그건 잘못이라기보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저, 너무 늦게 알게 된 게 아쉬웠고 내 몸에게 미안했다.
오랫동안 무시해온 감정의 찌꺼기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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