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난감해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머리를 자르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만, 미용실에 가는 것이 곤란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머리가 좀 긴 것 같은데?”
누가 이렇게 말하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땅한 미용실을 고르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요즘 미용실들은 하나 같이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여서 들어가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너무 깨끗해.’
‘여기는 도무지 츄리닝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겠군!’
‘맙소사. 여기는 대체 어떻게 상호를 어떻게 읽는 거야?”
이런 식으로 미용실을 하나하나 건너뛰다 보면, 머리를 자르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려서 결국 삼일은 잠을 못 잔 것 같은 몰골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 번은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청담동의 구불구불한 언덕길 위에 있는 커다란 미용실 체인에 간 적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서 녀 명의 헤어 디자이너 분들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았는데, 그때부터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직원 한 분이 내 가방을 받아 들고, 다른 미용사 선생님이 내게 커피를 권했다.
이윽고 담당 디자이너 (담당 디자이너라니!) 라며 자신을 소개한 미모의 여성이 나에게 인사말과 함께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열심히 말을 골랐는데, 그럼에도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내가 점점 더 바보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정말 힘든 부분은 머리를 자르기 위해 자리를 안내받고 난 뒤에 시작된다.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나는 이 악마적인 질문에 대해 딱 두 가지 답을 가지고 있다.
“깔끔하게 해 주세요.” 또는 “숱 많이 쳐주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두 말 사이의 차이를 잘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대답하곤 한다.
대부분의 헤어 디자이너들은 빠른 눈치와 넓은 자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통 나에게 더 이상 머리에 대해 묻지 않고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때때로 앞머리, 옆머리 길이, 제품 사용 유무에 대해 물으시는 잔인한 분들도 계시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머리를 자르는 와중에도 ‘머리카락이 얇으시네요!’ 또는 ‘좀 옆 짱구신 것 같아요!’라면서 말을 걸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내가 그분에게 혹시 잘못한 게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쨌건 그렇게 머리를 다 자르고 나면 세면대에 뒤로 기대어서는, 갓 대학을 졸업한 것 같은 수습 직원의 정성을 담은 두피 마사지를 받아야만 한다.
이 정도로 대접을 받고 나면 황송해서 저절로 고개가 조아려지게 되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서 그들의 손에 쥐어주고 싶어 지게 된다.
친구에게 듣기로는, 요즘은 머리를 자르고 나면 미용실 문 앞까지 직원들이 나와서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주는 미용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대체 그런 서비스를 받고 나면 미용사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해 주어야 할지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이런 식의 고객 만족 서비스가 미용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내가 자주 갔던 동네 시장 골목의 ‘상아 미용실’도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더니 청결함과 친절함으로 손님을 맞는 끔찍한 곳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른 가게들처럼, 이제 미용실과 이발소도 '멋진 장소'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도 머리 자르는 것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집에서 자랐는데, 한 달에 한 번, 할아버지는 나를 집에서 1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발소로 끌고 가셨다.
'이발소'라는 글씨가 파란색 페인트로 적힌 회색 슬레이트 미닫이 문을 열어젖히면, 3인용 고동색 소파와 이발용 의자 하나가 전부인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발사 아저씨 아주머니 부부는 언제나 아래위로 흰색 옷을 입은 채로 손님을 맞았다.
할아버지가 한담을 나누며 이발을 하는 동안 나는 소파에 앉아 전국 노래자랑과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았다.
언제나 만화가 끝나기 전에 할아버지의 이발이 끝났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만화를 다 보고 머리를 자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이발사 아저씨는 말없이 양손으로 내 머리를 잡고 나를 훌쩍 들어서는 두꺼운 잡지책으로 높이를 맞춘 이발용 의자 위에 올려놓곤 했다.
질문과 대화는 일절 없었다.
아저씨는 양손의 새끼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잡은 뒤,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내려갔다.
아저씨가 자신의 힘으로 내 머리를 지탱했기 때문에, 나는 머리를 자르는 동안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발이 끝나고 나면 아저씨는 항상 면도칼로 구레나룻 부분을 다듬어 주셨는데, 면도 크림이 묻은 사각형 신문지 조각을 입에 문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잔털을 깎아 내려가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아주 가끔, 운이 좋은 날이면 아주머니께서 내 머리를 감겨주시기도 했다.
샤워기가 없었기 때문에, 커다란 플라스틱 물 조리개에 온수를 담아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겨주셨다.
내가 코에 물이 들어갔다고 찔찔 거리면 아주머니는 가만히 있으라며 비누 모서리로 내 옆머리를 억세게 문지르셨는데, 나는 그때 아주머니가 머리를 거침없이 때려 주신 덕분에 내 머리가 좋아졌다고 확신하는 편이다.
어쨌건 그렇게 이발을 마치고 나면 아저씨, 아주머니는 우리가 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다음 손님을 받았다.
머리를 자를 때마다, 나는 내가 점점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딱 한 번, 다시 그 이발소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는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았다.
나는 아무런 인사 없이 소파에 앉아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자, 아저씨는 옛날처럼 일체의 인사말 없이 머리를 잘라 나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보다 머리가 많이 곱슬곱슬 해졌네.”
내가 이발소를 나설 때가 되어서야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고, 그제야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