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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8. 2022

6월 28일 최서준의 하루

정기 면담

서준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월말마다 각 팀장들에게 팀원 면담을 할 것을 강요했다. 직원들의 성과를 매달 측정하고 어떠한 점을 보완해야 하고 어떠한 걱정거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팀장들의 의무였다. 팀장이 팀원들을 살피고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해줘서 월말 면담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팀도 있었다. 하지만 팀장들이 정말 하고 싶어서 면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 대부분의 팀 면담은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서준의 팀장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면담 자체를 귀찮아했다. 팀원들의 업무 평가는 이미 답이 정해진 다음이었고 그냥 요새 뭐하고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정도로 면담이 진행되었다. 그나마도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팀장은 팀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면담 때 했던 이야기를 그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늘은 서준의 팀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서준의 팀장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면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면담을 회사에서 벗어나서 커피나 마시면서 농땡이를 피울 수 있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도 면담 시간을 카페에서 사용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커피 값도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다른 팀원의 면담이 끝난 후, 서준의 차례가 되었다. 서준은 익숙한 듯 노트 하나를 들고 근처 카페로 갔다. 팀장은 케이크까지 시켜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서준은 팀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팀장은 서준에게 법인카드를 내밀며 마시고 싶은 것을 시키라고 했다. 선택권을 주는듯했지만 면담 자리에서 마실 수 있는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였다. 서준은 카운터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팀장은 서준에게 케이크를 권하지도 않고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노트북을 보면서 서준에게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었다. 팀장은 서준의 눈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서준은 이런 면담을 왜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준은 요새 잘 지내고 있고 회사가 끝난 후에는 테니스를 친다고 했다. 팀장은 서준이 테니스를 말하자 흥미를 느낀 듯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조금 더 이야기해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서준은 자신이 어디서 테니스를 치고 있고 언제부터 쳤는지를 말했다. 그때 서준이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서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을 때 팀장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아 맞다. 서준님. 전에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요새 자꾸 깜박하네.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서준이 테니스를 친 것은 6개월 전부터였고 팀장에게도 이 사실을 벌써 3번째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준은 아무리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도 이런 것까지 까먹는 팀장이 그저 실망스럽기만 했다. 

면담 자리는 아주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요새 서준의 업무 퍼포먼스는 굉장히 좋았지만 팀장은 괜히 시비를 걸며 이런저런 점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 조언들 역시 2~3달 전에 이야기했던 것들이었다. 서준은 반박할 힘도 없어 그저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준은 지금 이렇게 작성한 보고서가 어떻게 위에서 아무런 피드백 없이 통과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서준은 게다가 이런 것이 다 업무 평가에 반영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깐의 업무 이야기가 끝나고 팀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새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딸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얼마나 잘 치는지 등을 자랑하기 시작했고 서준은 그저 “예”, “좋으시겠어요.” “부럽습니다.”라는 식으로 응대했다. 가끔 서준이 팀장의 자식들을 칭찬하는 말을 하자 팀장은 기분이 좋아 크게 웃기도 했다. 서준은 그런 팀장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빨리 지금 시간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서준의 면담이 끝났다. 팀장은 다음 차례로 승민을 불러달라고 서준에서 부탁했다. 서준은 카페를 나와 팀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담배만 폈다. 

담배를 피우고 사무실로 돌아간 서준은 승민에게 카페로 가시라고 했다. 승민은 서준에게 “별 의미 없는 면담이죠?”라고 물었고 서준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승민은 오늘은 팀장에게 자신의 불만을 모두 이야기하겠다는 결심을 한 상태였다. 그는 결의에 찬 표정을 한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서준은 그런 승민을 보며 무의미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팀장은 그런 말을 들을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은 자리에 앉아 오늘 자신의 일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서준은 면담 같은 것 아무런 의미가 없고 지금 당장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하는 것은 서준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고 달라질 것 하나 없는 매너리즘에 빠진 면담의 날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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