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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30. 2022

6월 30일 김진수의 하루

점심 고르기

“그러면 자장면은 어떠세요?”


“중식? 미안 어제 먹었어요. 다른 것 없어요?”


지금 회사에 와서 업무적이나 인간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단 하나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점심시간 때였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던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나를 괴롭혔다. 

매주 다른 날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와도 문제가 없었지만 오직 금요일만은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어야 했다. 회식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밥을 먹어 팀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팀장의 제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금요일 점심 메뉴는 매주 돌아가면서 골랐다. 팀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제안하고 팀원  과반수가 동의하면 밥을 먹으러 갔다. 처음에는 이것이 잘 지켜졌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괜찮으니까 00 씨가 원하는 것을 골라요.”라며 다른 사람에게 메뉴 결정권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연차가 낮은 직원들이 점심 메뉴를 골라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팀에서 나는 연차가 두 번째로 낮은 사람이었다. 가장 말단 직원은 인턴이었기 때문에 내가 실질적인 막내였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제안해도 한 번에 통과하는 법이 없었다. 다른 직원들은 “그냥 아무거나 드시죠.”라는 입장이었지만 팀장은 사사건건 내가 고르는 메뉴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과반이라고는 하지만 팀장이 원하는 메뉴를 고르지 못하면 그날 점심은 먹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점심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었기에 메뉴를 고르는 그 짧은 순간에 팀장의 마음에 드는 메뉴를 골라야 했다. 


“그러면 청국장은 어떠세요? 전에 맛있게 드셨던 그곳이요.”


“음… 거기 정과장이…정과장! 청국장 안 먹지?


“아.. 예.. 뭐 상관은 없는데.. 전 안 먹기는 하죠.”


“그래, 일주일에 한 번 다 같이 먹는 자리인데 다른 사람 취향은 알아주자고. 다른 것 없어요?”


오늘도 팀장이 좋아하는 메뉴를 맞춰야 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까지 끌어드려서 거절하고 있는 팀장을 보니 더욱 짜증 났다.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는 없으세요?”


“나는 다 괜찮다니깐. 아 내가 너무 거절만 했나? 에이 뭐 먹고 싶은데요. 김대리가 다음에 제안하는 데로 갈게요!”


선택권을 팀장에게 넘기려고 했지만 팀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하도 거절을 당해서 이제 내놓을 레퍼토리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팀장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돈가스! 어떠십니까. 팀장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그 식당으로 갈까요?”


“아… 미안. 우리 아들이 저녁에 돈가스 먹자고 해서요. 정말 미안해요. 어… 그냥 햄버거 어때요?”


아…. 진짜 패고 싶다.


“네 거기 가시죠., 팀장님.”


정과장이 팀장의 말을 거들었고 다른 직원들도 햄버거 집이 좋다고 했다. 정말 빡치는 순간이다. 나만 바보 만들면 좋은 건가?


“예… 가시죠.”


“김대리 미안해. 다음 주에는 꼭 김대리 먹자는 데로 갈게요. 오늘 미안하니깐 내가 여러분들한테 커피 쏘겠습니다.”


난 너한테 총이라도 쏘고 싶다. 어우 진짜…. 업무적으로는 정말 완벽하게 잘해주고 팀워크도 좋은 곳인데 왜 점심마다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것 때문에 괜히 팀장을 안 좋게 보게 되고 일이 싫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는 아는지 모르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햄버거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먹겠지만 당분간은 팀장 생각나서 햄버거의 햄 자도 보기 싫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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