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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9. 2022

6월 29일 조승진의 하루

상반기 리뷰

오늘은 상반기 업무 리뷰가 있는 날이었다. 원래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오늘은 회사 직원 전원 오전 8시까지 출근하라는 말에 나는 서둘러 회사로 갔다.

지금 회사는 3년째 다니고 있는데 상반기, 하반기에 꼭 이렇게 전체 직원을 데리고 업무 리뷰를 한다. 각 팀의 성과를 발표하고 각 팀들은 칭찬받거나 욕을 먹었다. 물론 대놓고 욕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압박을 주기도 하거니와 공개된 자리에서 업무 성과를 지적받는 것이라 욕을 먹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수치스러운 자리였다. 회사 창립 초기, 직원이 10명이 안 되던 시절부터 시작한 전통이었는데 처음에는 서로의 실적만 공유하면 박수를 받는 자리였다고 한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회사의 문화가 되었다. 실적을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을까를 토론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회사는 더욱더 성과를 낼 수 있었고 회사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성장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이 회사 측이 지금과 같은 공개적인 업무 리뷰를 하는 이유였다.

나는 솔직히 지금 회사의 시스템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건설적인 비판보다는 공개 처형에 가까운 자리였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껴 퇴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나 역시도 좀 심한 말을 듣고는 얼굴 표정을 숨길 수가 없을 뻔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직원끼리는 서로 조심하려고 했다. 어차피 월급을 받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직위나 팀에 상관없이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었고 괜히 이상한 말을 했다가 사이만 서먹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장들도 마찬가지라서 다른 팀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발언은 삼가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임원진이었다.

업무 리뷰라고는 했지만 회사의 전직원이 아닌 각 팀에 대한 리뷰만 했기 때문에 임원진들은 자신의 업무로 공격당할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원진들은 보다 자유롭게 각각 팀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특히 대표는 그 정도가 심했다. 그냥 팀장들을 1:1로 불러서 혼내면 될 일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표현하니 리뷰를 하는 동안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심각해졌다. 그래서 팀장들은 업무 리뷰 날이 다가오면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직원들은 일부러 업무 리뷰 일주일 전부터는 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7시 50분이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미 회사에 도착했다. 업무 리뷰는 회사에서 가장 큰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했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지만 오늘만큼은 굉장히 조용했다. 팀장들은 업무 리뷰 내용을 계속해서 체크하며 복기하고 있었다. 일반 직원들은 오늘은 또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직원들은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냥 체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 들리던 신경 쓰지 않을 예정이다.


7시 58분이 되자 대표가 등장했다. 대표는 임원들과 몇몇 친한 직원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있었다. 임원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있었다. 조용했던 회의실은 그들만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8시 5분쯤 되자 모든 직원들이 도착했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회의실은 직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직원이 너무 많아 자리가 부족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냥 서있었다.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좁은 곳에 일찍 불러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그는 지난 6개월 동안의 회사 실적을 보여줬다. 회사는 작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했고 앞으로 어떤 일을 준비 중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형적으로 내실을 키우기보다는 회사의 몸짓을 키우는데 급급한 비즈니스였지만 대표는 지난 몇 년 간 이러한 태도로 회사를 급격하게 키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생각을 바꾸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표는 업무 리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업무에 대해서 그냥 서로 칭찬하고 손뼉 치는 자리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업무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이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고 오늘 이 자리는 직원들끼리 보람도 느끼고 에너지도 얻어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자신의 발언을 마쳤다.

칭찬만 하는 업무 리뷰라면 싫어할 이유는 없지만 과연 대표가 그 말을 지킬지가 의문이었다. 이런 말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자세로 다른 팀들의 업무 리뷰를 지켜봤다. 그리고 정말로 칭찬만 하고 끝났다. 업무 실적을 발표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팀장들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내려왔고 점차 회의실 분위기는 좋아졌다. 자신감이 생긴 몇몇 팀장은 농담도 던졌고 모두 즐거워했다.

그리고 우리 팀 차례가 되었다. 평소에 자신감이 조금 부족한 우리 팀장이었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팀장은 자신감 있게 상반기 업무에 대해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성과 발표였다. 팀장의 발표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정말 고생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렸다.


“잠깐만요!”


그때 갑자기 대표가 팀장에게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우리 팀이 상반기 목표한 것을 이루기는 했지만 실속이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평소처럼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자신감이 넘치던 팀장은 다시 주눅 들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니, 죄송하다는 말씀만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겠다 대안은 없는 건가요? 제가 지금 말했으니 생각해야 한다는 건가요? 평소에는 생각 안 하고 계신 거고요? 여기서 만족할 건가요?”


대표가 다시 팀장을 쏘아붙였다. 듣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표정이 얼어있었다. 아직 발표를 마치지 않은 팀장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팀장은 고개를 숙이고 적당한 변명거리를 말했지만 대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대표의 잔소리는 심해질 뿐이었다.


“여하튼…. 잘하셨고요. 잘했는데.. 우리 김 팀장님이 일을 워낙 잘하니깐. 내가 아쉬워서 그래요. 제가 말한 거는 이따 더 자세히 이야기해봅시다. 수고하셨어요.”


대표는 갑자기 자신의 발언을 마치고 팀장을 향해 박수를 쳤다. 팀장은 감사하다는 뜻으로 대표에게 인사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내가 팀장이었다면 대표를 한 대 치고 싶었을 것 같다.


우리 팀장이 혼나고 난 후의 발표는 대표의 잔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대표가 처음 약속한 칭찬만 하는 분위기는 초반에 아주 잠깐만 유효한 것이었다. 결국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업무 리뷰 시간이 되었다.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업무 리뷰가 완전히 끝났다. 일반 직원들은 이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업무를 보면 된다. 하지만 팀장들은 대표와 1:1 면담을 하기 시작한다. 1:1 면담은 보통 오후 2시까지 진행된다. 아침 일찍부터 한 리뷰부터 생각하면 거의 6시간 가까이 상반기 업무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오후 2시에 1:1 면담이 마무리되면 대표는 임원진과 팀장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는다. 이 점심도 거의 2시간 가까이 먹는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우리 팀장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아침부터 시달린 팀장들은 이때 이미 기진맥진해져 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대표에게 들은 내용 중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팀원들에게 말하고 하반기 업무를 어떻게 할지 논의를 하게 된다. 이렇게만 하면 퇴근 시간은 훌쩍 지나게 된다. 오전 8시에 출근하지만 퇴근 시간은 동일하다. 오히려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한다.

지옥 같은 업무 리뷰 날이지만 좋은 점도 있다. 리뷰를 한 다음 날은 무조건 전사 휴무이기 때문이다. 매해 6월 마지막 영업일과 12월 마지막 영업일은 그래서 항상 쉬고 있다. 그나마 이게 있기에 이 미친 짓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팀장이었다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것이다. 팀장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이렇게 피를 말리는 조직에서 오래 있을 자신이 도저히 없다.

오늘 할 일은 마친 나는 서둘러 퇴근했다. 모처럼 찾아온 휴일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일이 금요일이 아니라는 것이 아쉽다. 7월 1일 금요일이 되면 회사는 또 바빠질 것이다. 12월에 있을 업무 리뷰에서 최대한 깨지지 않기 위해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회사에 몇 년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바보 같은 문화는 내가 퇴사하기 전에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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