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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06. 2022

7월 6일 안민수의 하루

말 바꾸기

민수의 현재 사수는 말 바꾸기의 달인이었다. 불과 5분 전에 본인이 했던 말을 바꾸지만 얼굴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민수는 처음에는 자신의 사수가 거짓말에 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다른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말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그의 버릇 때문에 민수는 더욱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사수가 하는 말 중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민수는 사수의 진짜 문제는 말 바꾸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나와서 다른 팀 사람들은 사수를 정말 싫어했다. 그러나 사수는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잘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상사들은 사수를 옹호했다. 또한 사수는 성과는 잘 냈으니 상사들이 그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민수 같은 밑의 사람들은 사수 같은 타입과 같이 일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오전에 사수가 시킨 일을 마무리 지으면 사수는 꼭 일에 대해 꼬투리를 잡았다. 예를 들면 가격 책정하는 방법을 사수의 제안처럼 만들어놓으면 그걸 보고 “왜 이렇게 했느냐”라고 하는 것이 사수의 업무 방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는 자신의 사수와 일을 같이 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만약 민수가 싫은 티를 내면 사수는 “내가 지금 너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인데 왜 그런 똥 씹은 표정을 하느냐?”라며 서운해했다. 민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수는 윗사람들에게 혼날까 봐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오전에 결정한 일이 혹시 잘못될 가능성이 보이면 입을 싹 닫고 “네가 문제야”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민수가 보기에 그런 것은 책임 없는 자세였고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적당히 거리가 있는 상사라면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민수가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점을 제외하면 사수는 민수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민수도 어떤 면에서는 사수를 존경했고 좋아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수의 업무 태도는 민수를 지치게 만들었고 민수는 사수가 인간적으로도 미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수는 민수에게 오늘까지 어떤 자료를 준비하라고 시켰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는 않았다. 민수는 멋대로 일을 처리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집요하게 사수를 괴롭히며 가이드라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민수는 혹시 몰라 녹음기까지 켜서 사수의 말을 남기려고 했다. 

민수의 오늘 업무 우선순위는 전날 사수가 시킨 자료였다. 민수는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사수는 갑자기 민수 보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민수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말하니 사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것 말고 다른 일을 먼저 하라고 시켰다. 민수가 갸우뚱하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묻자 사수는 그건 나중에 해도 된다고 했다.

민수는 반신반의하며 다른 업무를 우선 처리했다. 오후 4시쯤 되자 갑자기 사수는 민수에게 어제 자신이 시킨 자료를 어디까지 정리했는지 물었다. 민수가 지금은 다른 업무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사수는 화를 내며 “아니. 어제 시킨 일은 다 정리 안 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민수는 황당해하며 “아까 다른 일 먼저 하시라고 하지 않았나요?”라고 반문하자 사수는 “그건 그런데. 그래도 일은 어느 정도 정리했을 것이라 생각해서 다른 업무를 드린 거죠. 그래도 마무리는 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민수는 순간 책상을 뒤엎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민수는 하는 수 없이 빠르게 정리해서 보고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수는 “됐고. 지금까지 정리한 거 먼저 보여줘요.”라고 대꾸했다.

민수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지금까지 정리한 자료를 사수에게 보여줬다. 사수는 대충 살피더니 “이거 누가 이렇게 정리하라고 했어요? 이게 잘못되었잖아. 이건 한 게 아니지. 다시 빨리 정리해요. 1시간 안에 괜찮죠?”라는 피드백을 줬다. 

민수는 사수에게 잠시 회의실에서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했고 사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민수와 회의실로 갔다. 


“바쁜데 왜요? 뭐 또 안 되는 거 있어요?”


짜증부터 내는 사수에게 민수는 조용히 녹음기를 내밀었다. 그리고 오전에 사수가 말했던 내용이 담긴 녹음을 틀었다. 


“하…. 민수님…. 이거 안 되겠네. 정말. 아니 상사의 말을 녹음을 해요? 그것도 동의도 안 구하고? 그리고 이걸 왜 트는 건데요? 민수님… 진짜 미쳤어?”


사수는 민수에게 화를 버럭버럭 냈다. 그리고 민수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송대리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녹음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동의 없이 녹음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대리님이 말씀하신 데로 정리했는데 왜 잘못되었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이런 실례를 범했습니다.”


“진짜…. 민수 씨 실망이다. 내가 동생 같아서 잘 챙겨주려고 했는데…. 요즘 사람이라 그러는 거야? 아니 나도 요즘 사람인데 민수 씨 같은 사람은 처음 봤네. 이거 진짜 예의 아니에요. 휴우…. 이번 건은 내가 넘어갈 테니깐 빨리 녹음 파일 지워요. 내 눈앞에서 당장!”


민수는 자신이 너무 섣불리 행동했다는 것을 깨닫고 녹음기를 들어 파일을 지웠다.


“핸드폰도 아니고…. 아예 녹음기를…. 민수님, 민수 씨. 아니 민수야. 우리 이러지는 말자. 내가 진짜 너 아낀다. 내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서 뭘 챙겨줄 수는 없기는 한데…. 난 너랑 잘해서 더 좋은 자리로 가고 싶었다. 에휴…. 이건 진짜 내가 그냥 잊을 테니깐. 1시간 안에 내가 시킨 것 정리해와요. 정리 못하면 그때는 저도 가만히 안 있습니다.”


사수는 민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민수는 자신의 행동이 결국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어설프게 상사에게 저항하려다가 괜히 입지만 흔들리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민수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민수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녹음기 사건은 잘못되었지만 사수가 오전에 했던 말을 바꾼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후회와 분노의 감정을 겨우 추스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민수는 아무 말없이 자료를 정리했다. 사수가 지금 시킨 데로만 정리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민수는 자료를 사수에게 보고했다. 자료를 보던 사수는 키보드로 무언가를 바쁘게 타이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료를 인쇄했다. 사수는 인쇄된 자료를 정리해서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은 자료의 내용을 보더니 사수에게 수고했다며 칭찬했다. 민수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뼈 빠지게 정리하던 것을 사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공으로 가져갔다. 항상 있던 일이었다. 사수는 자신이 민수의 이야기도 하고 있다며 항상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민수는 사수의 그런 말은 정말 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수는 한숨을 쉬며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업무에 집중했다.


퇴근길, 민수는 사수와 같이 집으로 갔다. 최대한 같이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민수는 피할 수가 없었다. 사수는 민수에게 오늘 자료를 잘 정리했고 팀장도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했다. 민수는 “그거 제가 다 한 거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사수가 난리 칠 것 같아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민수는 만약 보고 자료를 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으면 그때는 민수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민수의 사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민수의 상사는 책임 회피, 거짓말, 말 바꾸기 등 최악의 상사 유형이 다 합쳐진 사람이었다. 민수는 그런 사람 밑에서 지금 일하고 있다. 민수는 그래도 저런 개차반인 사람이 대리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중에 저 사람이 더 위로 올라가면 어떤 비극이 벌어질지 염려되었다. 그리고 그전에 민수는 회사를 떠날 것이라 마음먹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민수는 지금 옆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수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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