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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05. 2022

7월 5일 이영석의 하루

핸드폰 배터리

출근 준비를 마친 영석은 평소처럼 충전 중인 핸드폰을 충전선과 분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제 분명 배터리 충전을 하고 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충전이 전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석은 핸드폰 배터리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 영석의 핸드폰은 무선 충전기 위에 항상 올려져 있었다. 전화가 오거나 잠깐 핸드폰을 쓸 일이 있어도 용무가 끝나면 바로 충전기 위에 올려놨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오면 먼저 하는 것이 핸드폰을 충전하는 일이었다. 집안 곳곳에는 영석이 충전을 쉽게 할 수 있게 다양한 종류의 충전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핸드폰은 100%의 상태를 거의 유지했다. 못 해도 90%의 배터리가 기본이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영석도 핸드폰 충전을 까먹을 때가 있었다. 워낙 충전기가 곳곳에 있다 보니 당연히 충전을 해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늘이 그러한 날이었다. 분명 영석은 자기 전에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영석이 핸드폰의 배터리를 확인하니 89%였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 정도면 하루를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무직에 있는 사람은 말이다. 그러나 영석은 89라는 숫자도 불안했다. 그는 잠시 시간을 확인하더니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았다. 약 5분 정도라도 충전을 하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영석은 보조 배터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영석은 충전기를 하나 빼서 가방에 넣고 출근했다.

오늘은 영석이 하루 종일 외근이 있는 날이었다. 그의 가방에는 전날 회사에서 반출한 업무용 노트북과 노트북용 충전기,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가 들어있었다. 영석은 차가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로 이동해야 했다. 영석은 평소처럼 핸드폰을 하면서 미팅  장소로 이동했다.

미팅 장소 근처에 있는 역에서 내리니 핸드폰 배터리는 78%였다. 영석은 너무나 불안했다. 만약 미팅 장소에서 콘센트를 쓸 수 있다면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미팅 장소에서 콘센트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 회사의 노트북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치워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영석은 핸드폰을 충전하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미팅에 진지하게 임했다.

미팅이 끝나고 영석은 바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도 점심 먹을 시간이 있어서 근처 카페에 잠시 들렀다.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하나 사고 콘센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영석은 핸드폰이 다시 충전되자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 카페에서도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92%가 되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안심이었다. 영석은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했다. 영석은 이동하면서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었다.

다음 장소에 도착하자 영석의 핸드폰은 84%가 되어있었다. 영석은 그래도 예전에는 이 정도 핸드폰을 써도 배터리가 오래갔는데 요새는 빨리 닳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하였다. 영석의 핸드폰이 노후화되면서 배터리도 용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핸드폰 시스템 상 영석의 핸드폰 배터리 효율은 88%였다. 영석은 핸드폰 배터리를 교체할까 생각했지만 다음에 나오는 핸드폰으로 교체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 생각해서 조금 더 버티고 있었다. 


영석은 오후에도 계속 미팅을 다녔다. 핸드폰 배터리는 롤러코스터 곡선을 탔다. 충전이 가능할 때는 크게 올랐다가 아예 충전을 못할 때는 급격하게 내려갔다. 영석은 중간에 계속 카페를 들렸지만 콘센트를 사용 못 하는 곳들이 있어 충전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카운터에 맡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전화가 많은 업무의 특성상 그럴 수는 없었다. 영석은 충전을 위해서 지하철에 있는 콘센트를 이용하기도 했다.


오후 5시 30분. 이제 오늘의 업무가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영석의 핸드폰 배터리는 51%가 되었다. 영석은 지금 핸드폰을 산 이후에 배터리가 50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배터리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을 마치고 집에 가면 되는 것이었지만 영석은 계속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는 않았기에 배터리는 더 떨어졌다. 


영석이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 배터리는 40%였다. 이제 정말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영석은 계속 불안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집 안에 들어왔을 때 영석은 현관 바로 앞에 있는 무선 충전기에 핸드폰을 올려놓음으로써 안식을 되찾았다. 정작 영석의 업무용 노트북은 배터리가 10% 미만이었지만 그것은 영석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핸드폰…. 핸드폰의 배터리가 없는 것만을 불안해할 뿐이었다. 

현관에서 아주 잠깐 핸드폰을 충전한 영석은 집 안으로 들어와 침대 옆에 있는 충전기에 핸드폰을 꽂았다. 이제 핸드폰은 무한의 에너지를 얻었다.  그리고 영석은 바로 에어컨을 켜고 침대에 누웠다. 지금 그에게는 여기만 한 천국이 아마 없을 것이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충전되는 것처럼 영석의 에너지도 충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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