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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09. 2022

7월 9일 안정우의 하루

오늘의 운세

정우는 운세 신봉자다. 어렸을 때부터 정우의 집은 점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정우의 현재 주민등록상 생일도 동네에서 용하다는 사람에게서 받아온 날짜였다. 실제로 정우는 주민등록상 날짜보다 3일 정도 먼저 태어났다. 정우의 부모님은 동네에서 용하다는 사람을 매우 신뢰해서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갔다. 모든 것이 그의 말처럼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맞는 일이 있다면 역시 점쟁이 말을 따르기를 잘했다며 부모님은 안심했다.

정우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정우의 부모님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우 집안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정우의 부모님은 점집을 다녔고 무속인을 만나기도 했다. 평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정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꼭 사주를 보러 다녔다. 

자연스럽게 정우 역시 사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부모님처럼 모든 것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터넷 운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기서 나온 말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정우는 40살이 넘은 아저씨가 되었다. 정우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주를 보러 다녔다. 아이의 사주가 무척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우는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아이의 운세가 워낙 좋아서 정우는 아이가 나중에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정우는 항상 돈을 내고 사주를 보러 다닐 수가 없어서 무료 운세 서비스를 무척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5군데 정도는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운세가 어떤지 살피는 게 그의 아침 루틴이었다. 만약 운세가 안 좋게 나오면 굉장히 조심하면서 다녔고 운세가 좋으면 그저 기분 좋은 상태로 다녔다. 자신의 하루가 운세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정우는 자신이 운세를 미리 본 덕분에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작년부터 정우는 회사 후배가 추천해준 운세 앱을 사용하고 있다. 운세에 대한 분석도 무료 앱치고는 꽤나 디테일하고 정확도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정우는 그 운세 앱을 가장 신뢰하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꿰뚫어 보는 서비스라며 그는 무척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이를 추천해준 후배에게 고맙다고 했다. 후배는 그저 심심풀이로 추천해준 것인데 정우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오늘은 독단적으로 움직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만큼 바람이 불어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들이 떨어지는 형상입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참고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를 먼저 살피세요. 오늘은 말을 아끼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은 잠시 미루고 관망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좋습니다.]



정우의 오늘 하루도 운세를 확인하면서 시작되었다. 정우는 오늘 운세가 무척 안 좋아 조금 찝찝했다. 운세 서비스만 하루에 5개 정도를 확인하는 정우였기에 그는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운세를 체크해봤다.


[오늘은 미래를 위해 잠시 쉬어가야 하는 날입니다. 당신은 의욕도 자신감도 모두 넘치겠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날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다음을 위해 지금은 준비해야 하는 때입니다.]


정우의 두 번째 운세도 첫 번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뉘앙스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오늘은 움직이지 않는 편이 낫다는 평가였다. 정우는 오늘 운세가 확실히 안 좋다 생각해서 다른 서비스까지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른 운세를 한번 확인하기로 했다. 


[오늘은 멀리서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문제는 잠시 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복잡해 보여도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면 해답이 보일 수 있는 법입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주변의 말을 무시하지 말고 명심하고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정우는 마지막 운세를 보고 오늘은 절대 움직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우는 마지막 운세에서 멀리 다른 곳으로 가라고는 했지만 다른 운세에서는 움직이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기에 조금 헷갈렸다. 하지만 결국  그냥 지금 있는 문제에서 정신적으로만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우의 아들은 오늘 다른 곳에 놀러 가자고 했지만 정우는 오늘 움직이지 않고 대신 집에서 놀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은 실망한 눈치였고 아내는 고작 운세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려는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주 가끔 아내의 운세까지 보고 간섭하는 것이 정우였다. 그런 점 외에는 대부분 괜찮았기에 정우와 함께 사는 아내였지만 운세에 있어서는 정우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우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자는 오늘 하루는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정우에게는 큰 시련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정우가 밖에 나갔으면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운세를 잘 따르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우는 오늘 하루만 조심하면 내일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정우의 아내와 아들은 내일 정우와 자신들의 운세가 괜찮게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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