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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27. 2022

8월 27일 김수진의 하루

공허함

원래 내가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난 몇 달 동안 내 마음은 더욱 헛헛해져서 더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로 지내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일어나니,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는데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웃고 화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공허’


이 단어가 현재 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문자 그대로 마음이 텅 빈 느낌이 계속 들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울하거나 슬프다는 감정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봐도, 즐겨보는 영상을 봐도, 친구가 보내준 실없는 농담을 들어도 나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감정을 보이는 척했지만 말 그대로 척 일 뿐이었다. 사회생활을 위한 연기 같은 것이었다. 이에 비해 집에서는 누군가의 반응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냥 멍하니 있었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것일까?

몇 번 생각해봤지만 그 생각조차 귀찮아져 지는 시점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주말.


주말이 되면 나의 공허함은 더욱 커졌다. 무엇을 할지 모른 상태로 아침에 일어나 무엇도 하지 않은 채 밤이 되어 다시 잠에 들게 되었다. 벌써 3달째 매주 주말을 이렇게 보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약속이 있어서 나간 적이야 있었지만 그들의 공간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적당히 분위기만 맞춰주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주에는 소개팅을 했다. 내가 하루 종일 넋이 나가 있는 것을 본 친한 언니가 나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언니는 내가 사귀는 사람이 없어서 힘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언니는 내 전 남자 친구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언니에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내 공허함을 그녀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매우 잘 생겼고 친절하며 직업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별로여서가 아니라 그냥 현재 내 마음에 누군가를 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아주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로 남자 쪽이 나에게 몇 번 호감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내가 대꾸를 제대로 하지 않자 결국 울분에 찬 말을 마지막으로 보내고는 더 이상 그의 메시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매너가 없냐면서 내게 화냈다. 나는 그저 미안하다고 했다. 진짜 미안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냥 그 감정 자체도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다음에 연락하자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친한 언니와의 사이도 이제 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상실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냥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엔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슬프지도 미안하지도 않았다. 언니와 나의 관계는 그냥 그저 그렇게 끝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고 내 잘못으로 결국 현실이 되었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공허함’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공허함’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극복이라고 하니 마치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이 굉장히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감정이 없는 감정일 뿐., 극복해야 할 대상은 아닌 것 같았다. 남들이 불편하니 내가 고쳐야 한다는 것일까? 내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데 억지로 밝은 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다 헛소리 같았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그냥 지금 내 감정을 물 흐르듯이 맡기기로 했다. 누군가의 위로도, 다른 즐거움이나 인간관계로 채울 필요도 없다. 그냥 당분간 이렇게 살면 언젠가 다시 마음이 채워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힘차게 인생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또 어떤가? 그것도 내 삶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내 삶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이 가는 데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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