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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Aug 26. 2022

8월 26일 공진수의 하루

업무 단톡방

이미 나는 퇴근을 했고 주말을 즐길 준비를 다 마쳤지만 완전히 쉴 수는 없었다. 회사의 단톡방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근 후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눠야 하는 채팅앱이었지만 회사 단톡방이 생긴 이후로는 쳐다도 보기 싫어졌다. 금요일 저녁까지 이러는 것은 정말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회사는 업무 시간에는 사내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단톡방이 생겼다. 업무가 끝난 이후에도 중요한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만들라는 위의 지시였다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연락이면 전화를 하지, 단톡방까지 만들어서 이러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업무 시간에는 사내 메신저만 신경 쓰면 되느냐? 그렇지 않았다. 메신저도 보고 단톡방도 봐야 했다. 처음에는 분명 회사 전 직원이 모인 공지용 단톡 방만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서, 그리고 프로젝트별로 단톡방이 생겼다. 업무 시간에 업우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단톡방에서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사내 메신저만 보고 있으면 “너 이거 왜 안 챙기고 있어? 내 말 못 들었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단톡방을 보고 있지 않으면 근무태만이라나 뭐라나.. 별소리를 다 들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더 심해졌다. 수시로 업무에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 이것 때문에 퇴근을 하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사람도 봤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봤다. 나는 이 두 경우를 모두 겪어봤다. 

회사 단톡방은 밤 11시까지 끊임없이 메시지 알림이 왔다. 그냥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올라오면 좋겠지만 100% 업무에 대한 이야기만 올라왔다. 이것 때문에 밤 11시까지는 계속해서 근무를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한 동료가 의도적으로 일주일 간 단톡방을 아예 보지 않은 적이 있었다. 동료는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동료에게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왔었고 다음 날 동료는 미친 듯이 털렸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동료는 그로부터 2달 후, 회사를 떠났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는 그 누구도 단톡방을 감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단톡방은 가끔 아침 일찍부터 울리기도 했다. 대처할 방법은 없다. 그런 날은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계속해서 단톡방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지옥 같은 단톡방 때문에 고통받고 있던 어느 날, 회사 전체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업무 시간 이후에는 업무 지시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을 또 단톡방에 올리는 것이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지옥이 끝나는 날이 다가온 것 같았다. 갑자기 이런 지시가 나온 배경에 대해 알아보니 누군가가 노동부에 민원을 넣은 모양이었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어떻게든 찾아서 술 한 잔 사주고 싶을 정도로 그가 고마웠다. 

그렇게 몇 달간, 회사 단톡방은 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환영했지만 윗분들은 단톡방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업무 지시를 업무 시간 내에 줘야 했다. 그래서 퇴근 시간 직전에 미칠 듯이 일이 몰려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퇴근 직전에 일을 주면 어쩔 수 없이 업무를 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야근을 하며 회사 메신저로 또 다른 업무 피드백을 들어야 했다. 이쯤 되니 단톡방이 문제가 아니라 윗분들이 문제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단톡방 폐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급한 부탁이라며 메시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용도가 폐기된 줄 알았던 업무, 프로젝트별 단톡방이 부활했다. 회사에서 다시 공지를 보내 단톡방 이용을 금하라는 말을 할 줄 알았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회사 단톡방은 다시 활성화되었고 우리의 업무 시간은 오후 11시가 되었다. 

오늘도 역시 그러하였다. 이곳저곳에서 쉴 새 없이 알림이 왔다.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저히 불금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오늘이 월요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오분 대기조처럼 단톡방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마음이 전혀 편치 않았다. 스트레스만 극도로 받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오늘 일을 보니 도저히 이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겠지만 단톡방이 활성화 안 된 회사를 찾고 싶었다. 적어도 내 퇴근 후의 삶과 즐거운 금요일을 지킬 수 있는 회사로 가고 싶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단톡방을 보며 나는 차라리 핸드폰이 고장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요일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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