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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12. 2022

2월 12일 조석준의 하루

주말출근

“주말에 출근을 하라고요?”


며칠 전,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이제 조금 친해진 곽 이사가 나에게 주말에 출근하라는 조언을 했다. 이 회사에서는 주말에 출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주말에 출근을 하라는 거야….


“진짜라니깐, 조 부장이 모르는데 여기는 정말 꼰대 회사라 주말에 출근하면 일하는 사람, 주말에 출근 안 하는 사람은 일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곽 이사의 말에 나는 그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어이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며 내가 회사를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맨날 출근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둘째, 셋째 주 토요일에는 그래도 나오는 게 좋아요. 내가 조 부장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도 이런 조언해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거 알려주지도 않아요.”


내 얼굴을 쳐다보던 곽 이사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그리고 왜 또 둘째 주, 셋째 주는 꼭 나오라는 거지?


“근데…. 왜 둘째 주, 셋째 주인 거예요?”


“이게 좀 복잡한 이야기인데, 내가 자세히 말해줄게요. 들어봐요.”


곽 이사는 주위를 살피더니 나에게 가까이 와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곽 이사가 하는 그다음 말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곽 이사의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참고로 지금 회사는 업계에서 1위를 하는 곳이었고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오랫동안 업력을 있어오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노하우라는 것은 이제 시대가 바뀌면서 낡은 것이 되었지만 여전히 회사는 예전의 방식으로 일해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경쟁회사가 생기면서 회사의 경쟁력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업계 1위라는 자부심은 회사를 눈멀게 하였고 자기 혁신을 하지 못한 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업계 1위라는 게 아직은 경쟁사보다 격차는 큰 편이라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것도 이 회사가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봉도 높은 편이었고….


여하튼 이 회사는 흔히 말하는 꼰대 회사였는데 주말 출근 역시 그런 면모의 하나였다. 물론 여느 회사처럼 주말 출근은 거의 하지 않는 회사였다. 당연히 직원들도 급한 일이 아니면 주말 출근은 하지 않는 평범한 회사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회사의 대표와 일부 임원들이 주말에 자진 출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창업가들이 회사를 만들 때 맨날 일주일, 밤낮없이 일하면서 생긴 습관이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문제의 송 이사가 입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송 이사. 현재는 회사의 실질적인 넘버 쓰리에 가까운 사람이다. 송 이사는 나처럼 부장 자리로 회사에 들어왔다고 한다. 워낙 업무 능력이 좋아 초고속으로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송 이사는 그보다 더 빠르게 승진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대표와 일부 임원들이 주말에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 이사는 자신도 할 일이 있다며 주말 출근을 자진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몇 주 동안은 대표도 송 이사가 주말에 출근하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나 우연히 주말에 나와 일하는 송 이사를 보게 되었고 대표는 그를 매우 칭찬했다고 한다. 그 이후 정말로 빠른 속도로 이사진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송이사의 직급도 있었고, 일도 잘했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송이사의 소문이 회사 일부에 퍼지면서 몇몇 직원들이 주말 출근을 자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직원들 역시 빠르게 승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문은 회사 전체로 퍼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니, 회사에서 승진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말 출근을 자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너무 많은 사람이 출근하자 회사에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 출근하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그 이후, 주말 출근을 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졌지만 1년 정도 지나자 슬금슬금 주말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회사에서 주말 출근을 강제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그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자진해서 주말 출근을 하고 있고 회사에서는 이를 암묵적으로 묵인함을 넘어서 주말에 안 나오면 일 안 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차장급 이상이 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이 정보가 일종의 정치 싸움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 새로 입사한 경력자에게는 말하고 있지 않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오픈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곽 이사가 나한테 말할 때 ‘내가 마음에 들어서’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었다. 


“에이, 그래도 정말 주말에 출근을 해요? 이사님도 정말 출근하세요?”


나는 웃으면서 곽 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곽 이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휴, 하기 싫음 하지 마. 내가 조 부장이랑 오래 일하고 싶어서 말해준 건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왜 둘째 주, 셋째 주예요?”


나는 곽 이사의 마음을 풀어주면서 다시 물었다.


“그때가 대표님이 주말에 회사에 오시는 날이거든. 대표님이라고 해서 매주 오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도 친한 사람들끼리 로테이션 돌면서 출근해서 대표님 오시면 사람들한테 카톡 날려서 대표님 출근하셨더 고 알려주지. 그래도 둘째 주, 셋째 주는 꼭 오시니깐, 그때는 꼭 오는 게 좋아요.”


“그럼…. 정말 일을 해야 하나요?”


“아니지…. 이 답답한 사람아. 대표님이 오셔서 일을 하나하나 검사하겠어? 그냥 하는 척만 하는 거지요. 물론 일이 있으면 하고.”


“만약 안 나온 사람 중에 잘못된 사람이 있었나요?”


“왜 없겠어? 대표님이 돌아다니시면서 기억 못 하실 것 같지만 얼굴이랑 이름들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러다가 계속 안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실적으로 압박을 크게 줘요. 할 수도 없는 미션을 줄 때도 있고. 여하튼 오래는 못 버텨요. 나랑 같이 입사한 친구도 있는데, 그 친구는 정말 반골 기질이 있었어요. 나랑 비슷할 때 그 친구도 주말 출근에 대해 들었는데, 나는 계속 출근했고 그 친구는 계속 안 나왔어요. 몇 달 지나니깐, 업무적으로 어떻게든 망신 주고 혼내고, 압박 줘서 그만두게 만들더라고. 참 대단해, 여기….”


곽 이사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여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거 어디에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에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회사가 어디 있나 싶었다. 


그날 곽 이사와 한참을 커피숍에서 떠들며 회사 생활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얻었다. 하나같이 이상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이 주말출근만큼 충격적인 것은 없었다.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나 역시 반골 기질이 조금 있어서 처음에는 주말 출근을 하지 않았다. 곽 이사가 나에게 왜 안 오냐고 메시지를 계속 보냈지만 나는 주말에 일이 계속 있어서 못 나간다고 말했다. 곽 이사도 1~2주는 계속 나에게 이야기하더니 결국엔 알아서 하라며 포기했다. 나는 내 주말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 곽 이사가 나를 혼내거나 가끔 정말 며칠 밤을 새워야지만 해결할 수 있는 업무가 들어왔을 때는 내가 정말 주말에 출근하지 않나 눈 밖에 나서 이러는 건가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것으로 주말 출근을 하기는 정말 싫었다. 

그렇게 2~3달이 지나자 업무적으로 압박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왔다. 어떻게든 더 잘 해내려고 했고 야근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말 사소한 것으로 혼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 팀에 대한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곽 이사가 나를 다시 불렀다. 업무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곽 이사는 긴말은 하지 않았다, 주말에 출근을 해보라는 그의 말이었다. 이젠 부탁도 충고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 신념을 버리고 주말 출근을 했다. 정말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주말에 나오니 정말 다른 부서들의 사람들이 꽤 많이 출근해 있었다. 지금이 토요일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사무실에 복귀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몇몇 직원들은 정말 일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회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었다. 곽 이사는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오! 조 부장! 담배나 하나 피러 가지!”


내 얼굴을 본 곽 이사가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정말, 너무 많이 나와있네요. 평일인 줄 알았습니다.”


흡연 장소로 이동한 내가 곽 이사에게 말했다.


“내가 뭐랬어. 에휴.. 보통 2시쯤 오시니깐 조금만 있다가 가요. 점심은 먹었어요?”


“네. 대충 먹었습니다. 식사하셨어요?”


“나도 대충 먹었어요. 다음엔 같이 먹죠. 요새 싫은 소리 좀 했는데 미안해요. 나도 위에서 자꾸 압박을 하니깐 어쩔 수 없었어…. 뭐 그렇다고 조 부장이 완벽하게 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아…. 네 괜찮습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정말 모든 게 짜증 났다. 이 회사가 뭐라고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주말에 나온 나 자신도 한심했다.


자리로 돌아간 나는 다음 주에 하는 업무들을 살펴봤다. 그냥 오늘이 월요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업무를 하고 있을 때쯤, 정말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수고들 많아요. 주말인데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어? 조 부장도 왔네?”


사무실에 온 사람들이 누군지 슬쩍 살펴보던 대표가 내 얼굴을 보더니 놀라면서 말했다. 나를 정확히 꼭 집는 것을 보니 정말 지켜보고 있는 것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대표에게 인사를 했다. 대표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윽고 곽 이사가 대표에게 다가가며 능글맞게 인사하며 ‘담배 피우셨냐?’며 말을 이어갔다. 대표는 곽 이사를 보고 반갑게 웃으면서 곽 이사와 함께 사무실을 떠났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래야 하는 것일까. 나도 몇 달이 지나면 회사의 시스템에 적응해서 이들처럼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당장 어디를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망할 장단을 당분간은 맞춰줘야 할 것 같다.


오후 4시쯤 지나자 대표도 퇴근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슬슬 짐을 챙기며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곽 이사도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 부장, 퇴근 안 해?”


“아, 저 이것만 조금 보고 가려고 합니다.”


“뭘, 주말에 와서 일을 해. 대충 마무리하고 들어가요. 나 먼저 갑니다.”


곽 이사는 이 말을 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주말에 와서 왜 일을 하냐니…. 당신이 나오라고 했잖아….

1시간 후, 일을 마무리 한 나는 컴퓨터를 끄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였다. 이제야 주말의 사무실 같았다. 퇴근을 하기 전 화장실로 간 나는 그곳에서 손을 씻고 있는 송 이사를 만났다. 

이 모든 것의 원흉.


“어, 조석준 부장? 맞죠?”


“안녕하세요. 이사님”


나는 송 이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주말에 나오고 수고 많네요. 요새 조 부장 칭찬 좀 들리는 것 같은데, 언제 밥이나 한 끼 해요.”


이 말을 한 송 이사는 화장실을 나갔다. 칭찬이라고? 그럴 리가 있나. 나를 알기는 아는 건가. 그 어디에도 진심이 들리지 않는 송이사의 말이었다. 아, 아니지. 내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는 것을 보니 빈말로 하는 말 같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내가 있던 층에는 이제 사람이 정말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살핀 나는 사무실의 모든 불을 껐다. 이제 드디어 다시 집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동네 치킨집을 들려 치킨을 샀다. 예전에 왜 아버지들이 퇴근할 때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오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마 그날은 무척이나 힘든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이 그랬다. 

앞으로 얼마나 이곳을 다닐지 모르지만 오늘이 이 회사에서 첫 주말 출근을 한 날이 되었다. 아마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주말에 나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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