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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14. 2022

2월 14일 현지섭의 하루

퇴사 후 첫날

월요일 아침.

모두가 돌아온 월요일에 괴로워하며 일어날 때, 지섭은 계속해서 잠에 취해있었다.

모두가 무기력한 표정으로 무거운 사무실의 공기를 맡고 있을 때도, 지섭은 잠을 자고 있었다.

모두가 괜찮지 않은데도 억지로 웃으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지섭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섭이 완전히 일어났을 때는 12시가 훌쩍 지났을 때였다. 배가 고파 일어난 지섭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핸드폰으로 인터넷이나 하고 있었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의 이메일 앱을 켰다. 주말 사이에 온 업무 메일을 체크하려고 했지만 이제 지섭이 볼 메일은 없었다. 지섭은 이제 자신이 신경 쓸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더 이상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지섭은 지난주에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이직할 곳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섭은 회사를 떠났다. 무모한 결심이라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섭을 다른 곳에 추천할 테니 이직할 회사는 구하고 떠나라는 사람도 있었다. 지섭의 결심을 진정으로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섭과 친한 사람들은 지섭이 로또라도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지섭은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퇴사를 했다. 회사에서 자신을 붙잡는다면 연봉이라고 크게 부르겠다고 생각했지만 회사는 쿨하게 지섭의 퇴사를 인정했다. 지섭은 이렇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한탄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퇴사를 하는 날, 동료들은 지섭을 배웅했다. 지섭은 자신의 퇴사를 아쉬워하는 동료들을 보며 그래도 자신이 회사에서 잘 지냈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게 쌓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좋아졌다.

퇴사하고 처음 맞은 주말, 지섭은 여유롭게 하루를 만끽했다. 이제 주말이 가는 것이 아쉬워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지섭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던 지섭은 아직 남아있는 회사 동료들과의 카톡방에 들어갔다. 지섭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이 업무 좀 같이 해달라고 하는 동료들의 메시지를 보며 지섭은 미소를 지었다. 지섭은 공동의 적, 바로 김 부장이 또 난리를 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섭은 무슨 일이냐며 동료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잠시 후, 동료들의 메시지가 다시 도착하기 시작했고 지섭은 여전히 회사의 일원인 듯 김 부장의 행동에 분노했다. 신나게 떠들다가 지섭은 이제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퇴사한 지 얼마 안 되었느니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지만 언젠가 이 방에는 모르는 이야기가 많아질 것만 같았다. 이제 지섭은 외부인이 되었다.

오후 2시가 넘어가자 지섭은 허기를 참을 수 없어 집에 남아있는 라면을 끓였다. 허겁지겁 먹었지만 생각보다 맛은 없었다. 혼자 먹는 밥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니 이번엔 잠을 참을 수 없었다. 지섭은 이대로 자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침대에 머리를 눕히자마자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잠을 너무 많이 잤지만 여전히 졸렸다. 지섭은 다시 잠이 들었다.

10분 후, 지섭은 다시 일어났다. 밥을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지섭은 배달앱에 접속해 밥 메뉴를 고르는데만 30분을 소비했다. 결국 지섭은 익숙한 치킨을 시키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또 잠에 들었던 지섭은 초인종 소리에 놀라 일어나 치킨을 받았다. 자리에 앉아 치킨을 먹으려고 하니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많이 잔 것 같다고 생각한 지섭은 잠깐 밤공기를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무려 48시간 만에 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섭은 너무 집 안에만 있어 머리도 잘 안 돌고 계속 자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지섭은 잠에서 깨기 위해 줄넘기를 가져왔다. 잠깐 스트레칭을 한 지섭은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줄넘기는 지섭의 거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섭은 운동을 싫어했다. 친구들과 축구와 농구, 다른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싫었고 잘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바로 줄넘기였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한 곳만 바라보며 몸이 지치거 무너질 때까지 줄넘기를 하다 보면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그저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성인이 된 지섭은 여전히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줄넘기를 했었다. 줄을 넘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고민과 상념도 뛰어넘는 기분이었다. 지섭은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지섭은 줄넘기를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백수로 시는 첫날,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잤지만 지섭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일부터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지섭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섭은 샤워를 하고 이미 식은 치킨을 먹으며 노트북으로 현재 자신의 자산을 정리했다. 퇴직금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몇 달을 버틸 돈은 되었다. 지섭은 여태까지 자신의 퇴사 이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었다. 지섭은 자신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섭은 완전한 퇴사를 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돈을 벌어야 했고 회사 외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지섭은 3개월 내에 다른 곳에 재취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꼭 취업에 집중하지는 않기로 했다. 백수로 있는 동안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고 회사 이외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과 평생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백수 생활이지만 지섭은 이 시기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빛나는 시기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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