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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16. 2022

2월 16일 이민재의 하루

건강검진

오늘은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내시경까지 해야 했기에 며칠간 식단 조절을 해야 했고 지난밤에는 아무리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약을 복용했다. 일단 이 약은 먹는 것부터가 싫었다. 내가 선호하는 맛도 아니었다. 마실 때부터 기분이 나쁜 약이었는데 내 기준으로 지나치게 많은 양의 물을 같이 마셔야 했고 맛조차 역했다. 구역질이 나서 토를 할 뻔했다. 

처음 마셨을 때는 배에서 별 느낌이 없었으나 조금 지나니 배에서 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정말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장까지 내뱉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 영혼의 모든 게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새벽 내내 화장실을 몇 번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분명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에 가면 또 모든 것을 쏟아내게 되었다. 고통스러워하면서 짧은 잠을 청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다시 약을 먹었다. 사실 이제 몸에서는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을 겉 같아 그냥 안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인터넷을 보니 그렇게 하면 장청소가 잘 되지 않아 다시 해야 할 수 있다는 말을 보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약을 다시 먹었다. 여전히 역했다. 정말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화장실에 갔다. 이젠 정말 아무런 힘이 없었다. 


아침 일찍 병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이제 집에서 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은 계속 가고 싶어서 이동하다가 또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자동차를 가져가면 안 되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탔다. 택시를 타는 방법도 있었지만 혹시 모를 참사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병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잠시 내려 화장실로 뛰어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접수대로 가서 내 이름을 말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받았다. 그리고 탈의실로 가서 병원 특유의 향이 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 정처 없이 병원에서 안내하는 데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 간 병원은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 후기를 보니 괜찮은 곳이라 선택했는데 꽤나 깔끔하게 되어있어 기분이 좋은 곳이었다. 안내를 따라 처음 이동한 곳은 혈압을 재는 곳이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이상이 없었기에 별 부담 없이 손을 넣었는데 내 모습을 잠깐 살피던 간호사 분이 “혈압이 좀 높네요?”라고 흘리듯이 말하고 가셨다. 혈압이 문제가 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혹시 몸이 안 좋아진 거면 어떡하지? 갑자기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내 키와 몸무게, BMI를 측정했다. 이 수치는 보나 마나 했다. 아마 결과지에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고 나올 것이다. 항상 듣는 말이라 나도 항상 건강검진 전에 식단이라도 조절해서 와야지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지키지 않고 왔다. 다음엔 정말 식단과 체중을 조절해서 와야겠다. 그냥 결심만 하게 되는 곳 같다.

다음으로는 시력과 청력, 안압, 흉부 엑스레이, 피검사 등의 기본적인 검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측정이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게임에서 미션 해결하듯이 지나가는 곳도 있었고 의사 선생님이 조금 여러 가지를 물어보시는 곳도 있었다. 

병원의 동선은 꽤나 복잡했다.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두 층을 모두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2층에 갔다가 1층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가뜩이나 힘이 없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려고 하니 다리에 힘이 도저히 들어가지 않았다. 

병원의 공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나는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다. 일단 검사를 해야 했지만 나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다. 막상 화장실에 가니 신호가 오지는 않았다. 한참을 화장실 변기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핸드폰도 탈의실에 두고 그대로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신호가 와 잠시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화장실에서 나가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간다고 분명 말했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남은 항목을 측정하고 나는 대망의 내시경 센터로 이동했다. 

사실 나는 아직 대장내시경을 받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워낙 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년 전부터 대장내시경을 신청하고 있다. 덕분에 먹기 싫은 약을 주기적으로 먹게 되었다. 내시경 센터로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수면내시경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누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여러모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수면이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내 몸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어떡하지?

다시 접수대로 가서 내시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병원에서 새로 준 약을 들이켜고 내 몸에 꽂은 주삿바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아직도 몸속에 뭔가를 더 내뱉어야 할 것이 있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는 생각보다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오늘따라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잠시의 기다림 이후,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자리에 누워 자세를 취했다. 나는 내가 수면에 드는 과정이 궁금했다. 항상 이렇게 누운 다음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시경 검사하는 곳으로 들어온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렷하게 버텨보려고 노력했다. 시야가 흐트러지고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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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이 들었던 것일까? 깨어있던 것일까?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말을 똑바로 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지금 대장내시경을 하는 것 같았다. 앗…. 하필 내시경을 하고 있을 때 정신이 들다니…. 근데 배가 너무 아팠다. 나는 자연스럽게 배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도 내가 어느 정도 정신이 든 것을 눈치챘는지 “많이 아파요?”라고 물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내 머리의 필터를 통과한 말 같지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내가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전하게 깬 것은 아니었다. 다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잠시 후, 나는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이미 모든 진료가 끝나 있었다. 간호사 분이 나를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몸이 굉장히 가벼웠다. 푹 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깬 것 같은 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간호사 분은 나에게 근처에 있는 의자에서 쉬다가 나오라고 했다. 나는 의자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다시 잠이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배가 너무나도 아파서 일어났다. 대장을 내시경 장비가 휘젓고 다니던 그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까 정신이 들었던 게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면 아까 무슨 헛소리를 한 것이지? 나는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잠시 지나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잠시 화장실을 갔다. 먹은 게 없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 검진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위랑 장에서 큰 이상은 없지만 작은 용종들이 있어서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배가 아픈 것에 대해서 묻자 의사 선생님은 가스가 차서 그런 것이라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정말 너무 아파서 가스를 어떻게든 빼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배를 째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너무 아파하자 병원에서는 잠시 로비에서 쉬다가 이상 있으면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나는 집에 가다가 아픈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잠시 병원에서 쉬었지만 이윽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검진을 위해 로비 의자를 찾는 게 보이자 나는 접수대에 말을 하고 병원을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배가 너무나 아팠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아 나는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갔다. 계속해서 배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워했다. 택시 기사님은 나를 힐끔 보면서 몸이 안 좋냐고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계속해서 배를 마사지해줬다. 어떻게든 가스를 배출해야 했기에 나는 몸을 계속 움직이며 장에 자극을 주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괴로워했을 때 마침내 나는 가스를 배출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기진맥진해진 나는 잠도 자지 못 하고 멍하니 있었다. 오히려 잠은 오지 않았다. 배는 여전히 아팠지만 무언가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죽 밖에 없었다. 어제 사둔 편의점 죽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밥을 먹었지만 입맛은 그리 없었다. 어제저녁만 해도 건강검진을 마치면 먹을 음식을 여러 가지 생각했지만 이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올해도 건강검진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아직 젊기에 건강검진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내 삶의 위기를 발견하고 막을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적적해졌다. 부디 이번 결과에 아무런 이상이 없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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