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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01. 2022

3월 1일 이종환의 하루

삼일절

아주 어린 시절, 나에게 삼일절은 그저 개학 전날이었다. 그날만 되면 몸이 아픈 것 같았고 학교에 가기 너무 싫었다. 이제 늦잠도 못 자고 하기도 싫은 학교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심했던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두려웠다. 작년에 사귀었던 친구들이 나와 다른 반에 배정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렇게 절망적인 기분이 들 수가 없었다. 새로운 교실, 처음 보는 친구들, 낯선 선생님,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학년이 올라갔다는 이유로 어려워지는 교과서 등 이 모든 것이 너무 싫었다. 계속 방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이 지겨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삼일절은 그런 나에게 마지막 휴일 같은 날이었다. 부모님을 졸라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했고 재미있는 곳으로 놀러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와 노는 것 대신 잠을 더 자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가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 나보다 더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공부를 안 하니깐 어른은 더 좋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내 나이 열 살이 되던 해, 그해에도 어김없이 삼일절이 찾아왔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나를 아침 일찍부터 깨웠다. 나는 오늘까지만 늦게까지 잘 수 있는데 계속 깨우려고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날따라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셨다. 어린 나였지만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정을 멈추고 씻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은 아버지에게 나는 갈 곳을 물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더니 열 살이 된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혹시나 해서 놀이공원을 가냐고 물어봤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나는 아버지의 처음 보는 진지한 모습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를 혼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 신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머니도 함께 나와 같이 간다고 하니 나는 소풍을 가는 기분이 들었다. 

차를 타고 간 곳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꽤나 많이 줄을 서고 있어서 이곳도 놀이공원인가 싶었지만 건물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에 나의 마음은 약간 움추러들었다. 사실 약간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건물은 차갑게 느껴졌고 공기는 무거웠다. 어린 나였지만 이곳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이리저리 살피는 나에게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이곳의 정체를 알려줬다. 이곳은 바로 서대문형무소였다. 나는 그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하지만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보며 나는 끔찍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낯설고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조금은 순화해서 이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아버지가 역사를 그렇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도통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귀담아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모님과 함께 한 서대문형무소 체험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린 아들이 축 쳐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자 부모님은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집에 나를 데려가 주셨다. 평소 같으면 정신없이 먹었을 테지만 그날따라 입맛이 그리 없었다. 낮에 본모습과 이야기가 그 정도로 충격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제대로 먹지 못 하는 나를 보며 걱정하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저 피곤했고 잠을 자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나에게 오늘 나를 서대문형무소로 데려간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차근차근 설명하시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삼일절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슬픈 이야기였다. 그때는 계속 쓸쓸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차갑고 무섭던 그날의 공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직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토닥토닥하며 안심시켜주셨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자 내 마음도 조금은 안정되었다. 이제 다음 날이면 학교를 가야 했기에 잠을 청해야 했지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을 찾았다. 그날은 그 책을 읽고 자고 싶었다. 사실 유관순 누나나 안중근 의사의 위인전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삼일절 같은 날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위인전에 나오는 대단한 사람의 가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현실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잠을 안 자고 책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살며시 미소를 보이셨다.


그 이후, 나는 역사책을 즐겨봤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일어난 연도를 외우는 것을 좋아했고 가장 시험을 잘 보는 과목은 역사였다. 이른바 역사 덕후가 된 것이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챙겨보려고 했었다. 그 시절의 아픔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때가 있었고 만행을 보며 분노에 치밀었던 때가 있었다. 

항상 역사책을 즐겨보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역사 하나도 모르고 잠만 자던 종환이가 이제 아버지보다 역사를 더 잘 알게 되었다”라고 말하셨다. 하지만 사실 그때뿐이었다. 역사의 의미는 알았지만 나이를 더 먹자 여전히 노는 것이 좋았고 역사 과목은 그냥 다른 과목보다 조금 더 잘하는 정도의 과목, 시험 볼 때 대충 답은 알 수 있는 과목 정도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 나이도 30살이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이젠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 가면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 모든 것이 미숙하고 혼나고 갈리는 나이. 그렇게 나는 사회초년생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버지가 왜 휴일을 그렇게 좋아하셨는지, 왜 잠만 자고 싶어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 놈이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하냐.”라고 핀잔을 주셨다. 

오늘은 다시 삼일절이다. 직장인이 되니 휴일이 반가웠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오늘과 광복절만큼은 그저 놀면서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의 서대문형무소가 기억나 아버지에게 아들이랑 오랜만에 드라이브도 하고 같이 걷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아버지의 차를 내가 몰고 부모님을 태우고 서대문형무소로 향했다. 부모님은 아들과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인데 좋은 곳을 가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셨지만 나는 오늘은 삼일절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처럼 말이다. 부모님의 표정을 보니 그래도 기분이 조금 좋으신 것 같았다. 20년이 지나, 이제 자식과 부모님의 입장이 바뀌었지만 서대문형무소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차가웠다. 역사의 의미 역시 변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무서워했던 나였지만 오늘은 숙연한 마음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봤다. 

저 멀리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이 보인다. 아마 저 아이도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입장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는 것을 보니 적어도 나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내 아이와 함께 이곳에 오고 싶었다. 삼일절의 의미와 그 무게,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아이가 이곳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데는 나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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