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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06. 2022

3월 6일 임기택의 하루

아버지로 사는 것

나는 또래보다 빨리 결혼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빨리 장가를 가고 싶어 했다.

다행히 만나는 사람과 마음이 맞았고 그녀 역시 빨리 결혼을 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시기보다는 살짝 늦어졌지만 나는 취업을 하자마자 바로 결혼 준비를 해서 친구들 중 가장 빠르게 결혼을 했다. 

운이 좋게 아이도 빨리 생겼다. 신혼 생활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막상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 책임감이 더 생겼다. 사회 초년생이라 가지고 있는 돈은 적었기에 아이를 위해서 대단한 것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 가정을 굶지 않게 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잠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아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잘 참여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이 없었고 가끔 겨우 시간을 내서 친구들을 만나면 일단 대회 주제 자체가 나의 현실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이야기들이 많았다. 여전히 취업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내 주위 친구들은 나처럼 빨리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 너무 앞서 가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보다 공감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던 것은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30대 초반, 중반을 넘어가자 점차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아이를 가지는 친구들도 있어서 그때부터는 내가 그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친구였지만 선배 같은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는 내가 키우게 되었다. 힘든 일이었다. 30대 중반에 찾아온 이 고통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아이를 내가 키우게 되었지만 회사를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 댁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셨기 때문에 내 마음은 무척 어두웠다. 그래도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다시 지나고 스물여덟 살에 만난 아이는 어느새 14살의 사춘기 소년이 되어있었다. 출근길, 나를 향해 항상 방긋방긋 웃던 아이는 이제 나를 보고 인사조차 안 하고 얼굴도 보지 못 하고 넘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가 나를 귀찮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시기쯤, 친구들은 아직 어린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자랑하는 사진을 나에게 보냈다. 그 아이들은 너무나도 귀여웠다. 내 아들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라며 옛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지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왁자지껄했던 집은 어느새 고요한 공간이 되었다. 말 수가 무척 줄어들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서 TV만 보고 있는 날이 많아지셨다. 아이는 진작에 할머니와 나와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방에 들어가서 자신만의 세상에서 친구들과 노는 일이 많아졌다. 나 역시 조용한 성격이었고 사춘기의 아이를 상대로 대화를 하는 것을 어려워했기에 아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경우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다 아들에게 말을 걸면 아들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여기서 조금 더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귀찮아했고 계속 말을 걸면 신경질을 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늘처럼 주말이 되어 모처럼 가족들이 모두 있는 날이 되어도 대화는 거의 없었다. 거실에서 들리는 TV 소리가 우리 집의 거의 유일한 소음이 된지도 오래였다.

그래서 요새는 집에 있는 것이 싫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 가정상의 모습도 아니었다. 이를 해결하고 싶어 주변에 물어봤지만 친구들은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어 조언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처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모임에도 가입해서 정보를 주고받고 거기서 얻은 노하우를 아들에게 적용하려고 해도 잘할 수가 없었다. 할 이야기가 없으니 아들의 성적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고 그 경우에는 항상 최악의 형태로 대화가 흘러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것이었지만 아들과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토라진 아들은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나오고 있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오늘 같은 경우는 집안 정리를 해야 해서 내가 정신이 없는데 아침부터 아들과 싸우니 기운이 쏙 빠졌다. 나는 밀린 집안일을 먼저 하고 어머니와 아들을 위한 점심을 차렸다. 주말이지만 정말 1초도 안 쉬고 일만 하는 것 같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대화는 없었다. 너무 대화가 없자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내가 요새 다니는 회사에 대해서 나에게 물었다. 근데 뭐 특별히 할 이야기는 없었다. 평소와 같이 그냥저냥 잘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니 다시 대화가 끊겼다. 

점심을 먹고 아들은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커피를 내리고 어머니에게도 갖다 드리면서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도 나 사춘기 때 이렇게 힘들었어요?”


“너는 지금도 힘든데 사춘기 때는 오죽하겠니”


“아니…. 무슨 소리예요.”


“엄마는 오랜만에 아들이랑 대화하려고 아까 회사에 대해 물었는데 그리 건조하게 대답했잖니?”


“아.. 아니 그건 회사 생활이 그렇지요 뭐.”


“너는 조금 무뚝뚝한 편이니 준섭이랑 대화하는 게 많이 어려울 거야. 그래도 너 없을 때는 나랑 준섭이 대화를 좀 하고 있어. 일단 사춘기라서 그런 것보다는 네가 준섭이를 대하는 태도도 한 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


“흠.. 뭐 그렇긴 하네요.”


“사춘기 때는 다 힘들지. 너나 네 동생 키울 때 굉장히 힘들었어. 너랑 준섭이는 그냥 똑같았어. 어릴 때는 귀여워가지고 엄마, 아빠 하면서 네 아빠랑 나 꽁무니 쫓아다니다가 어느 날부터는 대답도 안 하고 그랬지.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음… 내 성격이 그런데 어떻게 해요. 여하튼 주변에 물어볼 때도 없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어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순탄한 적은 없었지만….”


“애들은 저 나이 때 되면 다 그래. 그냥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두고. 제가 옳은 길과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 어릴 때 생각해봐라. 내가 너한테 크게 뭐라고 한 적 있니? 준섭이의 변화를 잘 지켜봐 주고 애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멀리서 도와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오늘 이 말했다고 해서 억지로 대화하려고는 하지 말고, 오늘은 준섭이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떠니?”


“와…. 엄마 이렇게 말하니깐 전문가 같아요.”


“그냥 경험이지. 정답은 없지만 좋은 길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뿐이야. 그래도 너랑 준섭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야. 네 사촌 형 네 애 있잖니? 거긴 매일이 정말 전쟁이래.”


“아…. 그건 들었어요.”


“그러니깐. 너무 다그치지 말고. 애 하고 싶은데로 하게 하고 억지로 네가 정답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마. 그게 꼭 답이라는 법은 없으니.”


“네. 고마워요. 엄마”


“그래도 준섭이 덕분에 아들이랑 오랜만에 대화하니깐 엄마도 기분이 좋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하니 그래도 어느 정도 어떻게 아들을 대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머니랑 이렇게 대화를 하고 나니 시원하면서도 좋은 경험이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모자간에는 대화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서도 어머니와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갔다. 


결혼을 빨리 싶어 했고 가정을 빨리 이루고 싶었지만 좋은 남편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준비는 잘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모든 것이 서툴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만하면 아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데 넘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항상 노력해야지. 사춘기의 아들을 어떻게 키우고 이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게 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나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내 부족한 노력을 반성하게 되는 하루였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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