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Mar 07. 2022

3월 7일 지윤수의 하루

재수생

윤수는 지난달부터 재수를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윤수는 자신이 재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긴장하는 성격 탓인지 시험에서 실수를 많이 했고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윤수는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은 대학교 지원 때문에 고민하는 자신을 보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다시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윤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한 대학교에 합격해서 그곳을 가기로 했다. 

막상 대학교를 가려고 하니 윤수는 다시 흔들렸다. 주변에서는 재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윤수의 부모님도 그가 재수를 하기를 원했다. 결국 윤수는 대학교를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한번 1년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곧바로 재수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온라인 강의와 병행하며 2022년 2월을 맞이했다. 

처음 학원에 간 날, 윤수는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책과 기출문제지를 보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대로 화장실로 가서 구역질을 한참 한 후에야 다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선생님은 윤수의 몸상태를 걱정했지만 윤수는 괜찮다고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윤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재수 학원의 묘한 공기가 그의 마음을 다시 답답하게 했다.

윤수에게 재수 학원은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아닌 특수한 공간이었다. 활기도 없고 한 가지 집념만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윤수가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나치게 예민했고 또 누군가는 지나치게 풀어져 있었다. 그래도 윤수는 재수 학원의 목적이 무척 심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생각 안 하고 오직 성적. 대학교를 가기 위한 성적을 1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내서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 그것만을 윤수는 생각하고 있었다. 

윤수가 이번에 성적을 특히 올려야 하는 것은 수학이었다. 어릴 때부터 숫자 계산을 싫어한 윤수였기에 그는 수학을 잘하지 못 했다. 대학교도 수학을 안 보는 곳을 노리고 있었다면 괜찮을 수도 있었지만 윤수가 바라는 미래의 직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수학을 잘할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윤수는 죽어도 싫은 수학 공부를 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끝내 윤수의 발목을 잡았다. 윤수는 1년 안에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를 반드시 극복하고 싶어 했다. 그래야만 그가 원하는 미래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수 첫날, 윤수는 수학만을 공부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윤수에게 재수 학원은 의외로 체질에 맞았다. 윤수는 처음 며칠간은 그곳의 공기를 답답해했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오로지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이라 독서실보다 더욱 집중이 되었다. 무아지경. 윤수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공부만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윤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공부,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가는 길만이 윤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윤수는 지나친 압박감을 느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잠을 자고 있으면 이 시간에 다른 경쟁자들이 자신을 넘어설 것이라 걱정했고 꿈에서는 또다시 원하는 점수가 안 나와 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윤수는 매일매일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기 일수였다.

윤수는 최근 며칠 동안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계속해서 불안해하는 윤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선생님 역시 그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전문적인 상담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윤수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윤수는 단지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된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주말이었지만 윤수는 아침에 일어나 바로 학원으로 가 자습을 했다. 놀고 싶은 욕구가 조금은 있기는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마음에 맞는 학원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잠시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쉬는 동안 경쟁자가 자신을 추월할 것이라는 생각 했기에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0년을 살면서 지금처럼 집중이 완벽하게 되는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윤수는 지금 이 순간에 최대한 많은 지식과 실력을 쌓고 싶었다. 

오늘 윤수는 자신의 실력대로 보지 못했던 작년의 수능 문제를 다시 풀었다. 완벽히 수능과 똑같은 컨디션으로 시간을 맞추고 시험 문제를 풀었다. 한 번 풀었던 문제고 오답에 대한 공부도 되어있기 때문에 문제만 봐도 답이 바로 보이는 것이 많았지만 윤수는 최대한 처음 보는 문제처럼 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괴롭힌 수학 영역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윤수는 차근차근 현재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문제의 답을 도출해냈다. 작년에는 도저히 풀리지 않았던 것들이 오늘은 굉장히 쉽게 풀렸다. 윤수는 작년에 이렇게 잘 풀었으면 올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잡념이었기 때문에 윤수는 다시 집중하고 문제를 풀었다. 

모든 영역의 문제를 풀고 윤수는 작년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몸에 힘이 쫙 풀렸다. 작년의 트라우마가 생각나기도 했고 자신이 어떠한 점에서 실수를 했는지 다시 살필 수 있었다. 윤수는 잠시 학원을 나와 밤공기를 마시며 주변을 걸어 다녔다. 윤수는 재수라고 하는 감옥에서 벗어나 잠시 사회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윤수는 길을 가다가 또래의 남녀 커플을 잠시 쳐다봤다. 아마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윤수는 1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윤수는 지금 자신의 일상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윤수는 일상을 다시 되찾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다. 1년이 지난 후, 그 일상에 다시 복귀해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윤수는 기대하며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 남은 공부를 했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돌아갈 거다.’

이전 07화 3월 6일 임기택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