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하고 싶다

[부부 연애 일기] 열정적인 사랑의 밤들이 지나고 남은 것

by 써니B

그와 있으면 좋다. 오로지 그와 나의 욕망만이 살아 숨 쉬고 그래서 온전히 서로의 욕망에 더 가까이 집중할 수 있는 그 공간이 좋다. 그와 있을 땐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늘 헤어짐이 아쉬워 카페에서 서로의 곁을 놓지 않으려 했다.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괜히 한번 발걸음을 늦춰 보기도 한다. 밤이 깊었다. 이렇게 빨리 밤이 깊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그와 깍짓손을 낀 채 서로의 손가락 사이를 방황하며 손을 꽉 잡았다가 놓았다를 반복한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의 교신을 주고받는다. 간지러운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때 나는 맥을 못 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다. 이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조그만 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언의 메시지는 둘을 익숙한 그곳으로 데려간다.


우리가 깊은 밤을 함께 보내왔던 그 공간. 함께 새벽을 맞이할 그 공간. 발걸음이 빨라진다. 복도로 들어서면 내가 앞서고 그가 뒤따라온다. 열린 문 안으로 발을 내딛으면 갓 건조된 시트 냄새가 난다. 두 욕망의 교집합. 서로의 몸을 감싸 안고 키스를 한다. 구석구석 애무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교성과 한숨, 신음소리와 눈물, 힘이 한데 어우러져 욕망의 정점을 향해 간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나눈 후 욕실로 향한다. 몸에 비누칠을 하고 미끄러워진 몸을 부대껴 다시 한번 하나가 된다. 절정의 잔향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떤다. 침대에 누우면 시트의 건조한 마른 냄새와 함께 비누향이 퍼진다. 노곤하지만 행복한 꿈에 빠져든다.


열정적인 사랑의 밤들은 뱃속에 덩그러니 생명의 씨앗을 뿌렸다. 씨앗은 열매가 되고 세상 밖으로 나와 부모라는 역할과 책임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모든 삶의 중심과 세계관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다.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나에게 그는 여전히 착하고 친구 같은 남편이었지만, 가슴속에는 사랑 한가득 본능을 애써 외면하며 바쁘게 사는 삶을 택했다. 가장으로서 주어진 책임에 충실했다. 점점 서로에게 무덤덤해져 갔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뿐 생활에 지친 보잘것없는 몸뚱이는 외롭게 나이를 먹고 있다.


모든 평범한 것들은 지루하다. 지루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예측할 수 없어서 스릴 있고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연애를 지나 결혼의 관문에 들어서니 책임지는 삶의 연속이다. 결혼은 너무나 뻔하고 예측 가능해서 편안하다. 열정과 사랑의 설렘 대신 안정과 책임의 지루함이 자리를 차지한다.


책임의 삶에서 연애시절 불꽃같은 사랑을 꿈꾸는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걸까? 책임을 다하면 뭐가 남을까? 책임과 사랑은 동시에 갈 수 없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긴긴 생을 책임과 역할만으로 살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삶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는 사랑을 하면 기꺼이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 모든 순간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책임과 사랑은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 책임지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책임을 지게 된다. 책임과 사랑은 서로 다른 이름의 사랑이다. 책임만 지는 무미건조한 삶에는 사랑이라는 양념을 치면 된다. 사랑의 불안정한 속성은 기꺼이 책임을 짊으로써 안정감을 보완하면 된다.


어떤 학자는 "연애가 비일상의 운문 (韻文)이라면 결혼은 일상의 산문 (散文)"이라고 말했다. 연애는 만남과 헤어짐과 아쉬움, 설렘이 교차하는 낭만적 시라면, 결혼은 구질구질한 생활을 견뎌야 하는 현실의 산문이다.


낭만이 현실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쉽게 권태로움을 느낀다. 매일매일 밥만 먹고살 수 없듯이 가끔은 파스타도 먹고, 다니던 길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길로도 가보련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책임과 사랑 사이에서 오늘도 주문을 걸어본다.


사랑하고 싶다. 다시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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