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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종소리의 비밀

by 공간여행자

| 오늘은 유물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사실 얼마 전에 국립경주박물관에 다녀왔거든요. 분명 언젠가 다녀왔을 텐데, 마치 처음인 듯 새롭더라고요.

본관 앞에 커다란 종이 있는데요. 다들 이름 한 번쯤 들어봤을 바로 '성덕대왕신종'입니다. '에밀레 종'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 에밀레 종의 유래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 종'이라고 불리는 데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 때 아버지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이 종은 여러 번 주조를 시도해도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어린아이를 넣고 종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이에 한 여인이 자신의 어린 딸을 바쳤다고 합니다. 종이 완성된 후 첫 타종에서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듯한 애절한 소리 "에밀레, 에밀레"가 들려와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는 전설일 뿐이지만, 이 종의 깊고 애절한 울림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는 통일신라 시대 최고의 주조 기술이 집약된 걸작으로, 경덕왕의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1300년 가까이 그 아름다운 소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성덕대왕신


| 종은 왜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을까?

종을 자세히 보면, 마치 항아리를 거꾸로 세운 듯한 형태입니다. 이런 모양은 단순히 멋을 위한 게 아닙니다. 바로 소리를 멀리, 맑게, 오래 울리게 하기 위한 음향 설계죠.

위쪽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는 진동이 종 전체로 퍼지며 공기를 밀어내기 쉬운 구조입니다. 이 덕분에 깊고 울림 있는 소리가 나죠. 게다가 종의 재질인 청동은 금속 중에서도 공명에 뛰어나 울림을 오래 지속시켜 줍니다.


| 동양의 종, 서양의 종 – 타종 방식의 차이

동양의 종은 보통 외부에서 나무로 만든 '당목(撞木)'으로 종 외부를 칩니다. 주로 큰 종(범종, 보신각종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무거운 나무 기둥을 흔들어 옆면을 타격합니다. 이런 방식은 종 전체에 부드럽고 깊은 저음의 공명을 퍼뜨리는 데 유리하죠.


서양의 종은 보통 종 내부에 쇠공(클래퍼, clapper)이 매달려 있어 안쪽에서 치는 구조입니다. 종이 흔들리며 쇠공이 안쪽 벽을 타격하고, 상대적으로 짧고 경쾌한 고음의 종소리를 냅니다.

피렌체 두오모의 종


| 소리의 과학, '배음(倍音)'의 비밀

한국의 전통 범종 소리는 단일한 '땡~'이 아닙니다. 기본음 외에도 다양한 높낮이의 배음이 함께 들려 풍부하고 신비로운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종의 두께, 곡선 비율, 금속 조성까지 모두 정교하게 계산된 덕분입니다.


| 문양도 기능이 있어요?

종의 겉면에는 용과 연꽃, 비천 등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죠. 이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소리의 울림을 분산시키고 진동을 조절하는 기능도 합니다. 그래서 문양의 위치와 깊이까지도 하나의 과학적 설계입니다.


| 종은 '소리의 조각'

알고 보면, 종은 '소리의 조각'입니다. 무게 수 톤에 이르는 쇳덩이가 수백 년 전 장인의 계산 아래에서 신비롭고 맑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 그 자체로 경이로운 과학입니다.


성덕대왕신종은 현재 타종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유물의 보호를 위해서 타종하면 안 된다는 주장과 종의 기능상 주기적으로 쳐줘야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요. 종의 상태를 고려하여 2004년부터 타종은 중단되었습니다. 1300년이나 살아온 종이니까요.

대신에 현재 매시 정각, 20분, 40분에 녹음된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녹음된 소리이지만 꽤 생생하여 정말 저 커다란 종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느껴진답니다.


다음에 종소리를 들을 땐, 은은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마음 깊이 느끼며, 그 속에 담긴 물리학과 미학, 그리고 정성을 한 번쯤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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