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가 지났다. 말에는 힘이 있다. '가을에 들어섰다'는 말에 선선함을 느낀다. 6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엄마가 날 깨운다. 잠 기운이 가시지 않아 도로 눕는다.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갠다. 마당으로 나섰다. 바삭 마른 고추를 가려야 한다. 230근이 목표량이란다. 예쁘게 생긴 놈들만 골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손이 늦다. 농사라면 질색이지만 그늘 아래에서 이쯤이야. 엄마가 나를 보더니 날 새겠단다.
2024. 8. 16. 언덕 같은 고추 더미
천성이 그랬다. 서두르는 것이 서툴다. 승부라는 것에 열의를 태우지도 못했다. 심장이 시끄럽게 펌프질 해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다그치지 않는다. 알아서 잘 쉰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뭐든 애매하게 했다. 이 간단한 작업마저 엄마 입장에서는 분명 성에 안 찰 테다. 아들이니 망정이다. 아들 버프 Buff로 애매한 작업은 긍정됐다.
"이거 팔아가지고 너 서울 올라갈 때, 돈 몇 푼이라도 쥐어보내야지."
"엄마 말 들으면 내가 94학번인 줄 알겠어. 옛날 감성 바이브~ 응팔의 한 장면 같은 걸?"
"너도 자식 낳아봐라."
94학번은 아니지만 94년도에 태어났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 엄마는 내 손에 돈을 쥐어주고자 한다. 아들 민망하게. 내가 잠시 소득이 없으니 엄마는 드라마에서 들을 법한 대사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장갑을 벗고 잠시 마당 밖을 바라봤다. 아침 8시가 오전 11시 같다. 입추가 지났어도 볕은 뜨겁다. 그래도 아름답다. 지평선이 보이는 도시라 옆 도시의 아파트가 장난감처럼 보인다.
"엄마 나 이제 2주 있음 서울 가. 아쉽지?"
"벌써 그러냐? 너 있어서 편했는디. 방학이 금방 간다."
저 두 줄만 읽으면 매일 일손을 거든 줄 오해할까 적는다. 거실이 꺼끌 할 때 청소하기. 밥솥에 쌀밥이 동나면 밥 짓기. 내 방학 때 주 과업은 저 둘이었다. 덕분에 밥 지을 때 적절한 물양을 맞추는 감을 익혔다. 가끔 다 된 밥을 저을 때면 스스로 감탄한다. 된 밥과 진 밥 사이의 아름다운 지점.
한쪽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방학을 돌아본다. 학기 중이었으면 진작에 외웠을 실기 곡을 여태껏 못 외웠다. 역시 나의 애매함을 재삼 확인한다. 닥치면 해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방학을 유흥遊興으로 채워놓았다.
31살에 방학이라니. 과한 취미와 애정이 '바람'을 타면 사람을 뒤흔든다. 제대로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 이 바람은 이립而立이 머지않을 당시에 불어왔다. 그때는 다시 학부생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직職을 유지한 채, 있는 학위로 가까운 곳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작은 꿈이었다.
소박한 꿈이 때로는 부피를 속이고 압도적인 중량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주변에 쑥스럽게 말해놓았던 일이 부끄러워진다. 말이라도 하지 말걸.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다.